靑 권고에 결국 물러난 이병태… “일부의 성역, 강요하는 사회 안 돼”
우태경 기자
靑 공개 권고 두 시간 만에 자진사퇴 발표
“임명권자와 정부에 부담 줘서는 안 된다”
논란으로 물러난 세 번째 보수 영입 인사

이병태(오른쪽)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4월 15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5·18 민주화운동 성역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6일 자진 사퇴했다. 청와대의 사퇴 권고 공개 두 시간여 만에 이 부위원장은 자진 사퇴 의사를 청와대에 전했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이 부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알리며 “청와대는 이 부위원장의 사퇴 의사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부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제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된 글이 사회적 논란과 정치적 공방으로 확산됐다”면서 “임명권자와 정부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판단과 자진 사퇴 권고에 따라, 고심 끝에 부위원장 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이날 오후 “사안이 매우 엄중한 까닭에 이 부위원장의 사퇴를 권고했다”고 공개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가 이 부위원장에게 비공개로 사퇴를 권한 것으로 파악된 만큼, 공개 사퇴 권고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규제합리화위 부위원장은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돼 해촉이 불가능한 만큼, ‘공개 사퇴 권고’는 사실상 청와대가 꺼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압박 카드다.
청와대로선 최근 이 대통령의 외연 확장 방식을 둘러싸고 여권 내부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인 만큼, 논란을 조기에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청와대 뉴미디어풀단 인터뷰에서 자진 사퇴를 권고한 이유에 대해 “국정 부담이나 최근의 정치권이나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것 등을 감안하면, (이 부위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부위원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도 정치권의 압박으로 자진 사퇴에 이른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자신과 일부 집단의 성역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권력이 이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지적하면서다. 또 “자유와 방종의 경계마저 권력과 집단이 자의적으로 정의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의 시작”이라고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부위원장은 지난 2일 배재고 야구부가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로 중징계를 받은 것을 두고 “이 땅에 5·18이 성역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됐다. 이에 청와대는 4일 “정부 소속 기관의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면서 이 부위원장에게 공개 경고했지만,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이 부위원장이 여러 차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소신을 주장한 데 이어, 이날 오전에는 페이스북에 영국의 정치가 토머스 모어가 개인 신념을 지키다 처형됐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이 부위원장은 한국일보 통화에서 “(해당 글은) 저와 관련된 글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청와대 경고 이틀 뒤 올라온 글인 만큼 본인의 처지를 모어에 빗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로써 이 부위원장은 이재명 정부에서 개인 논란으로 물러난 세 번째 보수 진영 영입 인사가 됐다. 지난해 7월 강준욱 청와대 국민통합비서관이 계엄 옹호 발언으로 논란을 빚다 자진 사퇴했고, 올해 1월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가 갑질과 각종 비위 의혹으로 지명 철회된 바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 출신인 이 부위원장은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경제 책사로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은 통합·실용 인사 기조에 따라 이 부위원장을 지난 3월 총리급인 규제합리화위 부위원장으로 발탁했다.
- 우태경 기자taek0ng@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