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신문” “계엄해제 만세!” 꼿꼿했던 만평··· 삭제 45년 만에 전합니다

[계엄과 검열] ② 해고, 농성, 고문
안의섭 화백의 사회 풍자 4컷 만화 ‘두꺼비’
한국일보 73~89년 연재 당시 계엄 등 비판
“학생 시위 구호 읽는 맛에 산다” 우회 표현
검열단에 잘린 기사 352건 중 만평도 29건
전두환 정권 말, 안기부 끌려가 고초 겪기도

비상계엄 시기인 1979년 10월 27일부터 1981년 1월 24일 사이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에 의해 검열당했던 안의섭 화백의 4컷 만평 '두꺼비' 시리즈들 중 일부. 원본에는 배경에 검은색 음영 등이 있었으나 내용이 잘 보이도록 리터치했다.

비상계엄 시기인 1979년 10월 27일부터 1981년 1월 24일 사이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에 의해 검열당했던 안의섭 화백의 4컷 만평 ‘두꺼비’ 시리즈들 중 일부. 원본에는 배경에 검은색 음영 등이 있었으나 내용이 잘 보이도록 리터치했다.

1955년부터 여러 매체에서 사회 풍자만화 ‘두꺼비’를 연재했던 안의섭 화백은, 굴하지 않는 기자 정신으로 1973~1989년 한국일보 재직 시기 비상계엄, 신군부 세력, 제5공화국을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만화들을 그렸다. 위 만평들은 비상계엄 때인 1980년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에 의해 삭제돼 독자들을 만나지 못한 4컷 만화다.

맨 왼쪽은 1980년 1월 19일 자 만평이다. 전날인 18일 열린 연두 기자회견에서 최규하 대통령이 “될 수 있으면 (비상계엄을) 빨리 해제하려고 한다”고 밝히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담았다. 계엄 체제하에서 권력 장악을 노리던 신군부에게 달갑지 않은 장면이었을 것이다. 맨 오른쪽은 1980년 1월 16일 자 만평으로, 1979년 제2차 석유 파동(오일쇼크) 이후 고공행진하는 물가 탓에 시름하는 민심을 표현했다.

https://youtube.com/watch?v=ogdM1IukHkA%3F%26wmode%3Dopaque

가운데는 1980년 11월 26일 자 만평이다. 검열과 보도지침, 언론인 강제해직 등으로 무자비한 언론탄압을 벌였던 전두환 정권은 11월 전국 64개 언론사를 18개로 강제통폐합하는 데 이른다. 만평이 그려진 25일은 한국일보 자매지였던 서울경제신문이 폐간돼 종간호(마지막 발행 신문·1988년 8월 1일 복간)를 낸 날로, 배달부가 울며 신문을 배달해 눈물에 젖은 신문을 그렸다. 1년 가까이 계속된 언론학살에 우회적으로 비통함을 표현했으나, 이마저도 삭제된 것이다.

1986년 1월 19일 자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인 독재 권력은 안 화백을 안기부로 불법연행해 조사했고, 이후 연재도 중단시켰다. 해당 만평은 신문 초판에만 실리고 나머지 판에서는 실리지 못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이미지 확대보기

1986년 1월 19일 자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인 독재 권력은 안 화백을 안기부로 불법연행해 조사했고, 이후 연재도 중단시켰다. 해당 만평은 신문 초판에만 실리고 나머지 판에서는 실리지 못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억압적인 제5공화국 시기에도 비판 정신을 굽히지 않던 안 화백은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6년 1월 당시 투병 중이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상황에 빗대, 전두환 대통령 생일에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란 만평을 그렸다가 필화를 겪었다. 예순 넘는 나이에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두꺼비’는 1987년 8월까지 1년 7개월 동안 연재가 중단됐다.

국내 신문 시사만화 분야를 일궈온 1세대 만평가로 꼽히는 안의섭(1924~1994) 화백의 생전 모습. 1955년 경향신문에서 처음 시사 풍자만화 '두꺼비' 연재를 시작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대한일보 등에서도 연재를 이어갔다. 한국일보에서 연재한 17년(1973~1989년) 동안 두꺼비는 유신 체제 말기와 제5공화국 등을 풍자하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 신문 시사만화 분야를 일궈온 1세대 만평가로 꼽히는 안의섭(1924~1994) 화백의 생전 모습. 1955년 경향신문에서 처음 시사 풍자만화 ‘두꺼비’ 연재를 시작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대한일보 등에서도 연재를 이어갔다. 한국일보에서 연재한 17년(1973~1989년) 동안 두꺼비는 유신 체제 말기와 제5공화국 등을 풍자하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9년 10월 27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1981년 1월 24일 계엄 해제 때까지, 본보가 입수한 한국일보 검열 기사 352건 중에는 안 화백의 4컷 만평인 두꺼비 19건과 1컷 사회만평 10건 등이 포함돼 있다. 계엄 해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언론통폐합에 눈물짓고, 서민의 민생을 걱정하던 안 화백의 정신을 45년 만에 뒤늦게 전한다.

맨 왼쪽은 1980년 2월 27일 자 만평이다. 당시 언론들은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던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실명 대신 '재야 유력 인사'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검열 상황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셈이다. 가운데는 1980년 5월 6일 자 만평으로 '서울의 봄' 시기 학생 시위 구호에 공감하는 서민들 심경을 전했다. 맨 오른쪽은 1980년 2월 24일 자 만평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내려진 '긴급조치' 위반자들에 대한 복권 논의가 요맘때 이뤄졌는데, 응당 해야 할 복권 조치를 생색내며 한다는 식의 비판을 담았다. 모두 검열로 실리지 못한 만평들이다.

맨 왼쪽은 1980년 2월 27일 자 만평이다. 당시 언론들은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던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실명 대신 ‘재야 유력 인사’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검열 상황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셈이다. 가운데는 1980년 5월 6일 자 만평으로 ‘서울의 봄’ 시기 학생 시위 구호에 공감하는 서민들 심경을 전했다. 맨 오른쪽은 1980년 2월 24일 자 만평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내려진 ‘긴급조치’ 위반자들에 대한 복권 논의가 요맘때 이뤄졌는데, 응당 해야 할 복권 조치를 생색내며 한다는 식의 비판을 담았다. 모두 검열로 실리지 못한 만평들이다.

맨 왼쪽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이 발생한 후인 1980년 6월 중순경 그려진 만평이다. 최규하 대통령이 6월 12일 '내년(1981년) 상반기 중 선거를 실시해 6월 말까지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하자, 이를 들은 주인공이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는 심경을 담았다. 가운데는 6월 1일 자 신문에 실으려 했으나 검열당한 만평이다. 광주를 짓밟은 신군부는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해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는데, 이에 아연실색해진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 맨 오른쪽은 1980년 1월 10일 자 만평으로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아래에서 정부가 정치적 발전, 즉 민주화에 대한 '점진적 추진'을 강조한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만평들 역시 모조리 당시엔 검열돼 삭제됐다.

맨 왼쪽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이 발생한 후인 1980년 6월 중순경 그려진 만평이다. 최규하 대통령이 6월 12일 ‘내년(1981년) 상반기 중 선거를 실시해 6월 말까지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하자, 이를 들은 주인공이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는 심경을 담았다. 가운데는 6월 1일 자 신문에 실으려 했으나 검열당한 만평이다. 광주를 짓밟은 신군부는 정치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해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는데, 이에 아연실색해진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 맨 오른쪽은 1980년 1월 10일 자 만평으로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아래에서 정부가 정치적 발전, 즉 민주화에 대한 ‘점진적 추진’을 강조한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만평들 역시 모조리 당시엔 검열돼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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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①46년 만의 보도
    1. 46년 전 겨울 내란의 밤, 이제야 그 기사를 배달합니다
    2. 46년 전 계엄 때 삭제된 기사 352개, 어떻게 입수했나
    3. “탕탕탕···” 밤새 취재한 ‘쿠데타의 밤’ 기사 지워지고, 검열 지옥이 열렸다
    4. “박정희, 서울에 발포 명령 계획” 김재규 최후진술 보도, 전두환의 가위질로 삭제됐다
  2. ② 해고, 농성, 고문
    1. 전두환 ‘K'(왕) 만들기 공작에 1000명 넘게 스러졌다
    2. 간첩 잡던 군인이 언론인 때려 잡았다…목적은 ‘K(왕 만들기) 공작’
    3. “눈물 젖은 신문” “계엄해제 만세!” 꼿꼿했던 만평··· 삭제 45년 만에 전합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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