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졌냐” 비아냥에 답변 기회 박탈까지… ‘정치쇼’로 전락한 축구협회 청문회
박주희 기자
정몽규 전 회장에 ‘5선 도전 의사’ 질문
김진규 전 코치에겐 “그럼 왜 졌냐”
감독 선임 정당성 등 핵심 쟁점은 도돌이표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왼쪽)과 홍명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축구협회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한축구협회 청문회가 망신주기식 ‘호통 쇼’로 얼룩졌다. 위원들이 수준 낮은 질문을 던지거나 증인들의 답변 기회를 박탈하면서 정작 축구협회의 행정 난맥상은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축구협회 운영 전반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불거진 축구협회 책임론을 계기로 마련된 자리로, 정몽규 전 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등을 증인으로 불러 감독 선임 과정, 협회의 불투명한 의사 결정 구조 등을 따져 물었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가 시작되자 온라인에서 제기된 수준의 질문을 던지거나, 증인의 답변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질책을 가하는 상황만 반복됐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려)대 카르텔” 등을 언급하며 축구협회와 대표팀 내 인맥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정 전 회장은 “재임 당시 임명한 대표팀 감독 중 고려대 출신은 1명뿐”이라고 답했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축구협회 현안 관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백미는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질의였다. 그는 이미 사퇴한 정 전 회장에게 “5선에 도전할 것이냐”고 물은 뒤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질의를 끝냈다. 또 김진규 전 대표팀 코치에게 손흥민과 이재성의 선발 제외가 보복성 결정이었는지 추궁한 뒤 왜 경기에 졌는지 따져 물었다. 김 전 코치가 “경기하다 보면 이런저런 상황이 생긴다. 이재성과 손흥민이 안 뛰어서 경기를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답하자 “그러면 왜 졌다고 생각하나. 이런 태도 때문에 한국 축구가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도 이 모양”이라며 비아냥댔다.
축구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내용을 언급하며 축구협회 문제와 현 정부 인사 문제를 연결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한 정몽규 전 회장과 주고받은 문자 메세지를 확인하고 있다. 윤 의원은 본회의와 별개로 열린 문체위의 축구협회 청문회에도 청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서울신문 제공
청문회 과정에서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다. 정 전 회장이 청문회를 앞두고 지인을 통해 청문위원인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과 접촉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정 전 회장은 윤 의원으로부터 “정 선배에게 연락받았다. 더 잘 배려해야 하는데 송구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문자가 전송된 시점은 이날 청문회가 정회한 오후 1시 50분쯤으로, 윤 의원은 당시 축구협회 청문위원 자격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이에 정 전 회장은 5분 뒤 “신경 써줘서 감사하다. 이런 자리 말고 다른 자리에서 인사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에 대해 정 전 회장은 “어떤 질문을 할지, 내가 미리 준비할 것이 있는 지 등 답변을 잘 준비하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 역시 “개인적인 친분에 따른 연락이었고, 준비한 질의는 그대로 했다”고 밝혔다.

홍명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날카로운 논리가 실종된 탓에 핵심 쟁점이었던 감독 선임 절차와 협회 운영 시스템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정 전 회장은 위르겐 클린스만과 홍 전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절차상 정당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홍 전 감독 역시 자택 앞 빵집에서 사령탑 자리를 제안받은 것에 대해 “전력강화위원회에서 (감독직을) 제안하러 왔을 때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또 정 전 회장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면 청문회가 열렸겠느냐”는 질의에 “그랬다면 청문회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비판의 본질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음에도 이와 관련된 추가 질문은 없었다.
- 박주희 기자jxp938@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