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난 李 북핵 해법… 하노이 때보다 ‘제재 해제’ 허들 크게 낮아졌다

조영빈 기자

유엔총회 기조연설서 “북핵 고도화 중단 우선”
제재 해제 값 ‘핵시설 폐기→ICBM 중단’ 후퇴
일각선 “파키스탄식 핵 모델 길 열어줄 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핵 고도화의 ‘중단’을 비핵화 ‘입구’로 제시하고 나섰다. 취임 이후 강조해 온 단계적 비핵화 구상의 연장선이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제재 해제의 최소 조건으로 내세웠던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α)’보다 대폭 낮아진 조건을 들고 나온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과 미국, 중국이 공감하고 논의해온 과제”라며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멈췄던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할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 논의’를 남북미중의 4자 간 협의로 구체화한 셈이다.

핵고도화 중단→남북관계 회복→평화체제 4자 협의

또한 이 대통령은 북핵 해법으로 “우선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공개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대북)제재와 추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 중단을 맞바꾸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AP통신 인터뷰에서도 “달리는 바퀴의 방향을 바꾸려면 먼저 멈춰야 한다”며 “동결, 감축, 해체라는 단계적 접근법이야말로 북한 핵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실질적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기조연설 요지와 외신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대북제재 해제의 대가로 ICBM 등 핵무기 개발 중단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북미 협상을 개시하고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한 다음 중장기적으로는 남북미중 4자 간 한반도 평화체제 협의의 틀을 만들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미대화를 통한 비핵화 실현과 4자 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론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제시해 온 시나리오다. 달라진 부분은 ‘제재 해제’라는 대북 보상을 비핵화 과정의 어디에 둘 것이냐다.

너무 앞선 대북제재 해제…파키스탄 모델 열어줄 수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은 대북제재 해제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 알파(+α)’를 제시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핵시설 폐기는 핵물질 생산 포기를 의미하며 핵시설 신고와 검증 절차를 수반한다. 이에 비해 이 대통령의 제안은 ICBM 등 핵무기의 추가적인 개발만 중단해도 제재를 해제하자는 뜻이다. 핵 고도화를 멈출 수 있지만, 현존 핵무기 활용과 핵물질의 지속적 생산을 막지는 못한다.

한 전직 외교관은 “대북제재 해제의 ‘가격’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라며 “북한이 이미 핵 보유국이 됐다는 현실을 고려한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비핵화 과정에서 제재 해제를 지나치게 앞에 배치함으로써 제재 해제로 핵 보유국 지위를 얻은 파키스탄의 길을 북한에 열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대북제재 해제로 발생할 북한의 경제적 이익이 핵무기 개발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할 제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NYT 인터뷰에서 언급된 대북제재 해제는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대북제재 이행 주체인 유엔에서 제재 해제를 직접 제시하는 것은 외교적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총회#이재명#북핵#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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