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새 안보 전략엔 중·러 위협 실종, 외교는 측근과 졸속 결정
새 안보 전략서 초강대국 갈등 안 다뤄
中과 軍·기술 경쟁 모른 척… 핵심 누락
외교도 혼선, 원칙·절차 없이 한계 뚜렷

10월 30일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부산 김해국제공항 인근 김해공군기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나란히 선 채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엄연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위협이 새 국가 안보 전략에서 실종됐다. 중요한 외교 사안 결정이 극소수 대통령 측근 그룹 내에서 졸속으로 이뤄지기 일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추진 과정에서 노출된 난맥상이다.
현실 외면
8년 전 발표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국가 안보 전략은 초강대국 간 갈등에 방점을 찍고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이익에 도전하고 번영을 침식하려 하는 수정주의 강대국으로 묘사했다. 그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중국은 핵전력이 배가됐고, 대만 포위 훈련을 하고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해 근 4년간의 전면전 끝에 승기를 잡고 유럽이 재무장에 착수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최근 공개된 트럼프 2기 행정부 안보 전략은 오히려 양국의 군사적 안보 위협을 사실상 다루지 않다시피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트럼프 안보 전략에서 초강대국 경쟁을 다룬 장(章)이 통째로 사라졌다”며 “33쪽 분량의 해당 문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시된 내용”이라고 보도했다. 크렘린궁 대변인이 이날 타스통신에 “이번 조치는 긍정적이고, 미국의 이전 행정부와는 다른 접근”이라며 이번 전략을 환영했을 정도다.
중국과의 첨단 기술 경쟁 역시 새 안보 전략이 누락한 미국의 핵심 도전 과제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주중 미국 대사를 지낸 니컬러스 번스는 NYT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생명공학, 사이버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미중 간 경쟁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양국이 매일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군사 경쟁과 연결돼 있다”며 이런 내용들이 새 전략에서 지나가는 말 정도로 언급돼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초강대국 경쟁 논의가 배제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고 NYT는 설명했다. 다만 2017년과 달라진 주요 작성자의 세계관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게 신문의 추측이다. 경제 경쟁 위주로 기술된 중국 부분에는 중국과의 무역 협정 체결을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과 재무부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됐을 공산이 크다.
제도 공백

스티브 윗코프(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동 특사,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 트럼프 대통령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지난달 30일 미 플로리다주 핼런데일비치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단과의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핼런데일비치=AP 연합뉴스
외교 정책도 우려를 자아낸다. 이날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외교 정책 관련 의사 결정을 소규모 대통령 측근 그룹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 그룹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사업 친구인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 JD 밴스 부통령,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포함된다.
백악관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 측근 그룹을 즉흥적으로 부르며, 회의도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열리고, 결정은 신속하게 내려진다. 이 그룹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대신 백악관 국가안보보장회의(NSC)는 위축됐다.
컨트롤타워 부재는 혼선을 부르기 십상이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을 지낸 리처드 하스는 폴리티코에 “여러 사람이 각자 독립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말했다. 가령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경우 우크라이나에 하는 말, 유럽에 하는 말, 러시아에 하는 말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