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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파’ 레오 14세… 보수-개혁 가톨릭 분열 잡고 화합 이끌까

‘온건하면서도 신중한 성향’ 평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슷한 면모
트럼프 정책에 부정적 목소리도

8일(현지시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69)를 두고 보수파와 개혁파로 분열된 가톨릭계의 화합을 이끌 적임자라는 기대감이 쏟아지고 있다. 가톨릭계가 풀어야 할 각종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레오 14세는 가톨릭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더 균형감을 갖고 중재자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전임 프란치스코와 같은 듯 달라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레오 14세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첨예한 문제들에 대한 입장은 불분명하다”면서도 “기존 규범에 도전하고, 이민자와 빈자를 포용하며, 포용적인 교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전임 교황의 노선을 계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바티칸뉴스와 인터뷰에서 “주교는 왕국에 앉아 있는 작은 왕자가 돼서는 안 된다”며 “겸손하고,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함께 걷고 고난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 권위의 성직자임에도 가장 낮은 곳을 찾아 헌신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내성적이면서도 신중한 성격으로, 개방적·외향적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소수자(LGBTQ), 여성 역할 확대 등에 포용적인 입장이었던 반면 레오 14세는 도발적인 의제에 대해 균형 잡힌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레오 14세와 1970년대 같은 신학교에 다니며 수십 년간 친분을 유지해온 마크 프랜시스 신부는 “교황은 위기에 잘 대처하는 매우 균형 잡히고 신중한 사람”이라며 “모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하며 매우 안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레오 14세는 이민·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선 진보적인 입장이지만 일부 사안과 관련해선 비교적 보수적이다. 그는 2023년 한 기자회견에서 여성의 사제 서품 등 성직 참여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성소수자, 낙태 문제 등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도 통합과 화합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는 “그의 교회법에 대한 탄탄한 기반은 신학 중심의 교회를 바라는 보수 성향 추기경들에게 신뢰감을 줬다”고 전했다.

8일 미국 뉴욕에서 교황 레오 14세가 미국 최초로 교황으로 선출된 후 뉴욕타임스 2025년 5월 9일 자 1면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 놓여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8일 미국 뉴욕에서 교황 레오 14세가 미국 최초로 교황으로 선출된 후 뉴욕타임스 2025년 5월 9일 자 1면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 놓여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이민정책 등에 비판적 글 공유

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인 레오 14세가 모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각을 세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NYT가 그가 교황 선출 전 본명으로 운영한 것으로 보이는 엑스(X) 계정을 분석한 결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에 비판적 의견이 담긴 게시물이 여럿 있었다. 지난 2월에는 JD 밴스 미 부통령을 비판하는 가톨릭 매체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JD 밴스가 틀렸다. 예수는 타인에 대한 사랑에 등급을 매기라고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마시모 파지올리 빌라노바대 신학 교수는 “예전엔 러시아와 중국의 인권을 옹호할 교황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미국의 권력에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미국 내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과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레오 14세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불행히도 그는 가장 진보적인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존 앨런 주니어 가톨릭뉴스 웹사이트 크럭스 편집자는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미묘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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