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서 인권침해…악몽같은 2개월”
시민권자 한인 프레드 김씨 치료차 한국 갔다 기내 체포 ‘17년전 관세 미납’ 혐의
심장병 수술을 받은 60대 시민권자 한인이 재검진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17년 전 한국 관세청이 제기한 소송 문제로 기내에서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한인은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심장병 치료에 필요한 처방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해 심정지로 쓰러지는 등 인권침해를 당했으며, 주한 미대사관으로부터 영사 조력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LA에 거주하는 프레드 김(67)씨는 서울 삼성병원에서 심장병 검진을 받기 위해 지난 3월10일 한국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김씨는 출국 열흘 전 심장수술을 받았던 상황이라 18가지의 처방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내리자마자 법무무 출입국관리소 소속 직원 2명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더니 느닷없이 김씨에게 수갑을 채웠다. “무슨 이유로 나를 체포하느냐”고 항변했지만 “관세 포탈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는데 자세한 내용은 구치소에 가서 확인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치소 독방에 수감된 김씨는 휴대폰과 처방약을 압수당했다. 휴대폰이 없으니 그의 도착을 기다리던 가족이나 친지들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처방약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식사와 물을 못먹어 심장병 증세가 심해졌다. 김씨와 소식이 끊어진 가족들은 한국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끝에 그가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했다.
김씨는 자신이 한국 검찰에 체포된 이유를 구치소에 가서야 알게 됐다. 무역업을 하는 김씨는 지난 2006년 거래업체와 분쟁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관세청이 관세 5,000만원을 추가로 납부하라며 그에게 소송을 제기했었던 것이다.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서울지검에 출두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추가적으로 증거가 발생하면 재소환할 예정이니 일단 출국해도 좋다고 허락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그동안 검찰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 이 케이스가 자동 기각된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지난 해 월남전 종군기자였던 아버지가 작고해 국가유공자 자격으로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구치소에 수감된지 10일쯤 지나서 주한 미국대사관의 영사가 통역관과 함께 김씨를 방문했다. 김씨는 영사에게 “심장병 약을 복용하지 못해 건강에 큰 위협을 받고 있으니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영사는 “모든 절차는 한국법에 따라야 하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돌아갔다고 한다.
독방에서 10일간을 지낸 김씨는 5명이 기거하는 방으로 옮겼는데 같은 방에 있는 미결수들은 중환자인 그에게 온갖 굳은 일을 도맡겼다. 한국에 사는 조카사위의 도움으로 국세 전문가라는 모 변호사를 소개받아 재판을 준비했다.
심장병 증세가 악화된 김씨는 병보석을 신청했으나 별다른 이유없이 기각당했고, 구치소 의무실에 가서 증상을 호소한 그에게 허용된 약은 딱 2종류였다.
4월28일 결심공판이 열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변호사는 결심공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부는 김씨에게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관세포탈)으로 징역 2년, 벌금 8,000만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석방될 줄 알았던 김씨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이번에는 수원에 있는 외국인 구치소로 이감된 것이다.
구치소 측에서는 김씨가 항소를 포기하고 벌금 8,000만원을 즉시 납부해야 풀어줄 수 있다고 했다. 낙담한 김씨는 갑자기 혈압이 오르면서 일시적인 심정지 상태로 쓰러졌다.
그제서야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한 구치소측이 그를 방면했다. 가족들이 서둘러 달려 와 김씨를 일산에 있는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구치소에서 김씨가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은 검찰은 이 와중에 출국금지령을 내렸다.
결국 김씨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모아 준 돈으로 벌금을 간신히 납부한 뒤 항소포기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지난 5월11일 LA로 돌아올 수 있었다.
LA에 도착하자마자 굿사마리탄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미국 의사들은 ”이 몸으로 어떻게 버텼냐.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내게는 한국도 미국도 진정한 조국이 아니었다”며 ”유사한 일로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국에서 변호사를 다시 선임해 내가 당한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