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우월주의가 없다고 믿어라? 트럼프 세계의 이상한 애국심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외 1명
백악관 “스미스소니언, 미국史 폄하”
대통령 묵인 믿고 극우 단체도 활개

미국 건국 250주년 독립기념일인 4일 미 메릴랜드주 뉴캐럴턴의 한 지하철역에서 극우 백인우월주의 옹호 단체인 ‘애국전선’의 회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뉴캐럴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백인우월주의 역사 지우기’에 착수했다. 역사 속의 오명을 용납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태도가 아니라면서다. 대통령과 정권이 눈감아 줄 것으로 믿고 백인 민족주의 세력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백악관 국내정책위원회는 미국 건국 250주년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밤늦게 ‘미 역사 구하기(Saving America’s Story)’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162쪽 길이인 해당 보고서는 국립 박물관·미술관들을 운용하는 스미스소니언재단 산하 국립미국사박물관(NMAH)이 미국 역사 폄하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 왜곡된 역사관과 부적절한 이념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NMAH의 최대 과오는 미국사를 미화하지 않은 것이다. 보고서는 해당 박물관이 “미국 역사를 가르치거나 기념해야 할 국가 공유 유산으로 다루는 대신 시민을 분열시키고 낙담하게 만드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다”고 지적하며 △백인우월주의 △노예제 △정복 △외국인·여성 혐오 등을 미국에 대한 잘못된 규정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박물관은 우리가 애정을 품을 만하고 미래 세대에 전할 가치가 있는 미국 국가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애국적 역사관을 따르라는 압력”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애국심은 조국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이다. 그는 보고서 작성의 근거가 된 지난해 3월 행정명령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수정주의 운동이 “미국의 건국 원칙과 역사적 이정표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해 미국의 놀라운 업적을 훼손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야당 민주당 내 진보파인 ‘민주사회주의자(DSA)’ 진영을 이끌고 있는 조란 맘다니 미 뉴욕시장은 3일 건국 250주년 기념 연설에서 국가의 결점과 불평등을 감추는 게 애국심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백인우월주의자 행진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
집권 세력이 반성을 도외시하다 보니 역사가 퇴행한다. 1기 트럼프 행정부 첫해인 2017년 결성된 극우 백인우월주의 옹호 단체 ‘애국전선’ 회원 400명가량이 4일 노예제 옹호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들고 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미국을 되찾자’고 외치며 워싱턴 시내를 활보했다. 이튿날인 5일 미국 CNN방송에 출연한 더그 버검 미 내무부 장관은 이에 대해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미국의 근본 원칙은 민주주의를 복잡하게 만들기는 해도 표현의 자유”라고 말했다. 묵인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총선 격인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재집권 초기 대학을 상대로 걸었던 이념 시비, 즉 ‘문화 전쟁’에 다시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민주당 내 민주사회주의 진영 약진에 편승해 선거 구도를 공화당 대 민주당이 아니라 미국의 전통 가치와 공산주의 이념 간 대결로 몰아가려 여론 몰이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시도다.
- 워싱턴=권경성 특파원ficciones@hankookilbo.com
- 곽주현 기자zooh@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