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에는 ‘장벽’ 쌓고 中에는 ‘새 다리’ 놓은 北…이 대통령 대북·외교 정책, 고립세
조영빈 기자
<뉴스분석>
김정은 단둥 방문과 李 대북정책 위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 방문을 마친 뒤 서열 4위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의 배웅을 받으며 신압록강대교에서 환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다리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단둥=신화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중 무역의 새 동맥이 될 신압록강대교를 타고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24일 전격 방문했다. 북중 간 경제 협력의 새 장막을 김 위원장이 직접 열어젖힌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군사분계선(MDL)에 지뢰를 매설하고 방벽·철책을 설치하는 이른바 ‘국경선 요새화’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이뤄졌다. 중국·러시아와는 더 깊은 결속을 다지고 남측과는 ‘절연’하겠다는 북측 의중이 극명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가 꾀했던 ‘북미대화를 통한 대북 접근’ 역시 한미 갈등 심화로 낙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주변국과의 대북·외교에서 한국의 고립세가 짙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당일치기 방중…”그만큼 가깝다” 북중관계 과시

그래픽=강준구 기자
2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6주년을 맞아 단둥을 방문했다. 중국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의 영접을 받으며 단둥에 들어선 김 위원장은 항미원조(6·25전쟁의 중국식 명칭) 기념관을 찾아 기념탑에 헌화한 뒤 자신의 친필 글귀가 담긴 김일성 주석의 사진문헌기념판을 기증했다.
이어진 왕 주석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피로써 맺어진 조중(북중) 친선의 귀중함을 다시금 새겨보는 순간이었다”며 “오늘 방문에 특별하고 세심한 관심을 돌려준 존경하는 시진핑 총서기(국가주석)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왕 주석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이 “전통적인 친선과 전투적 우의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단둥 현지 버스 공장을 둘러본 뒤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귀국했다.
이번 방중은 단둥과 북한의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대교가 개통된 지 9일 만에 이뤄졌다. 북중 간 무역 거점인 단둥의 교역 수준을 한층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를 모았던 신압록강대교는 북중관계 부침 탓에 완공에도 불구하고 12년간 닫혀 있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신압록강대교 가동과 이에 대한 역사적 사명을 최고지도자가 직접 추인했다는 데 이번 방중의 의미가 있다”며 “북중 경협 확대에 대한 의지와 기대를 드러낸 것”이라고 짚었다.
김 위원장의 단둥행은 당일치기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의 ‘무박’ 해외방문은 이번이 처음으로 ‘북중 경협을 직접 챙기기 위해 언제든 방중할 수 있을 정도로 양국이 가까워졌다’는 과시적인 행보로도 풀이된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지 않은 첫 방중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의 연간 주요 정치일정인 제20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5중전회)를 앞두고 있어 김 위원장을 따로 만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북중 간 고위급 교류보다는 김 위원장의 북중 교역 현장 방문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남북은 ‘절연’…페이스메이커도 아득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이 20일 남부국경 요새화 공사 현장의 주요 지점들을 인민군 총참모부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북한의 최근 대외 행보가 이재명 정부의 대북 활로를 급격히 고립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4년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재확립한 북한은 지난해부터 MDL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새 철책을 설치하는 이른바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MDL 획정 문제를 논의하자는 남측 요구를 무시하며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의 반복된 담화를 통해 남측과 마주 앉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분명히 하고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중러 연대’ 노선을 재확인하고 남측과는 ‘절연’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쪽(중러)으로 협력 공간이 충분한 만큼 남측에 아쉬울 게 없다는 의중이 이번 단둥 방문에 실렸다는 뜻이다.
항미원조 기념일에 맞춰 중국을 방문한 것 역시 북중은 ‘혈맹관계’ 남북은 ‘적대적 관계’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중러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정책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짙어졌다”며 “중러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차단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북미대화를 남북대화로 연결시키겠다는 정부의 이른바 ‘피스·페이스메이커’ 시나리오가 펼쳐질 만한 분위기와도 멀어지고 있다. 최근 한미관계는 대미투자 이견, 정보라인 간 갈등, 쿠팡 논란, 전작권 입장 차 등 주요 쟁점을 해소하지 못하며 난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통상·안보 분야 곳곳의 동맹 간 신뢰 훼손이 방치되는 상황”이라며 “북미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미 측이 우리를 플레이어로 끼워주지 않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차 부원장은 “피스메이커가 되고 싶었다면 북미를 움직일 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했어야 했다”면서 “현재로선 어떤 효력의 레버리지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 조영빈 기자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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