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UAE 대리전 된 ‘예멘 내전’…중동 화약고에 불붙나
사우디 “UAE 극도로 위험 행위”
과거 동맹이었지만 해묵은 갈등↑
‘카타르 단교 사태’ 재현 우려

30일 사우디아라비아 측의 공습을 받은 예멘 남부 무칼라 항구에 있던 군용 차량들이 파괴된 모습. 이 차량들은 아랍에미리트(UAE)가 예멘 분리주의 세력 ‘남부과도위원회(STC)’를 지원하기 위해 보낸 물자들이다. 무칼라(예멘)=AFP 연합뉴스
한때 중동의 오랜 형제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해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동의 패권을 두고 두 나라의 자존심 싸움이 격화하면서 예멘 내전은 단순한 내부 갈등을 넘어 거대한 대리전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는 30일(현지시간) 예멘 남부 항구 도시 무칼라 항구를 폭격했다. 이 지역은 UAE의 지원을 받는 예멘 분리주의 세력 ‘남부과도위원회(STC)’가 근거지를 두고 있는 곳이다. 사우디는 UAE가 STC를 지원하기 위한 무기와 차량을 배에 선적해 이곳으로 보냈다고 주장하며 이를 “극도로 위험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은 레드라인(최후의 한계선)”이라며 UAE군에 “24시간 내 예멘에서 철수하라”고 경고했다.
다행히 직후 UAE가 병력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당장 두 국가의 정면충돌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양국 관계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우디가 한때 ‘혈맹’이었던 UAE의 지원 세력을 이례적으로 직접 타격한 데다, “UAE 행보가 사우디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적개심을 고스란히 들어냈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은 “예멘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두 걸프 국가가 정치적 영향력과 해상 운송로 통제권, 상업 접근권을 놓고 경쟁하는 여러 전장 중 하나”라며 “수년간 간접적으로 경쟁해오던 양국이 이제 직접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오른쪽)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UAE 아부다비 알아인 공항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환영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원래 사우디와 UAE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에 맞서 2015년 동맹을 맺은 사이였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로 대척점에 있는 세력을 지원하면서 사우디와 UAE의 입장이 달라졌다. 사우디는 국가 안보를 위해 국경과 접한 예멘 정부와 군을 지지했지만, UAE는 해상 무역로 확보를 목적으로 예멘 남부 독립국을 주장하는 STC를 지원해온 것이다.
‘불편한 동거’를 계속해오던 두 국가는 STC가 활동 무대를 사우디 국경 쪽으로 넓히면서 결국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UAE의 지원을 받는 STC가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여긴 사우디 측이 무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 왕세자는 3년 전 자국 기자들과의 비공식 브리핑에서 “UAE는 우리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며 “카타르에 했던 것보다 더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예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2017년의 ‘카타르 단교 사태’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만 해도 서로 손을 잡고 있던 사우디와 UAE는 카타르가 테러 조직을 지원하고 이란과 친하다는 이유로 국교를 단절하고 육·해·공 통행을 완전히 차단했다. 같은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임에도 단숨에 물자 보급을 끊어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사우디와 UAE가 서로를 향해 외교적, 경제적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제는 작은 국가인 카타르에 비해 UAE와 사우디의 ‘체급’이 어마어마하게 커 지역 안보가 상당히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현재 상황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건 예멘 북부를 장악한 후티 반군이다.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파레아 알 무슬리미 연구원은 가디언에 “강력한 견제 세력이던 사우디와 UAE의 갈등 심화를 후티 반군은 상당히 유리하게 여길 것”이라며 “자신들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이들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지켜보며 예멘 내 세력 확장이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