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 된 수단 내전… 배후엔 중동·미·러 ‘보이지 않는 손’

내전 당사자들에 외국산 무기 및 장비 제공
반군과 정부군에 끊임없이 군수 물자 공급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날 수 있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수단군 소속 무장 군인들이 11일 수단 동부 도시 게다레프에서 트럭을 타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게다레프=AFP 연합뉴스

수단군 소속 무장 군인들이 11일 수단 동부 도시 게다레프에서 트럭을 타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게다레프=AFP 연합뉴스

지난해 1월 수단 정부군(SAF)을 지지하는 엑스(X) 계정에 수단 바흐리 지역에서 아무런 총기도 소지하지 않은 채 길을 건너고 있는 민간인들의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영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무인기(드론)가 나타나 이들에게 포탄 두 발을 투하하고 사라집니다. 한 사람은 신체가 절단된 채 이미 즉사한 것처럼 보이고, 다른 4명은 영상이 끝날 때까지 2분 동안 그대로 쓰러져 있습니다. 해당 지역은 SAF와 내전을 벌이고 있는 반군인 신속지원군(RSF)이 통제 중이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자신들이 운용 중인 신식 군사 장비를 자랑하는 게시물”이라며 “각종 새로운 외국산 무기를 사용해 명백한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작은 단서는 오늘날 수단 내전이 단순히 수단 내 권력만 충돌하는 현장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내부 균열에서 비롯된 이 전쟁은 이미 중동과 아프리카 전역 강대국들이 얽힌 다층적 국제 분쟁으로 확장된 지 오래입니다.

2년 넘게 지속된 수단 내전의 뿌리는 2023년 4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9년 시민혁명으로 30년간 집권했던 알바시르 정권이 무너진 뒤 군·민 과도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SAF 수장 압델 파타 알부르한과 RSF 사령관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가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 군 파벌 간 갈등이 촉발됐습니다. 결국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 전역에서 SAF와 RSF가 동시에 공격을 개시하면서 전쟁은 걷잡을 수 없는 형태로 확산됐습니다.

세계는 왜.

세계는 왜.

군 권력투쟁이 만든 비극

신속지원군(RSF) 수장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왼쪽) 사령관과 수단 정부군(SAF)의 압델 파타 알 부르한 장군. 로이터 연합뉴스

신속지원군(RSF) 수장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왼쪽) 사령관과 수단 정부군(SAF)의 압델 파타 알 부르한 장군. 로이터 연합뉴스

애초 이번 내전은 1983년부터 2005년까지 장기간 이어졌던 제2차 수단 내전과 달리, 단기에 그칠 것이라 전망됐습니다.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내전이 1,000일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외국 세력의 개입 때문입니다. 수단을 둘러싸고 있는 중동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는 휴전 중재자로 나서고 있지만, 배후에선 각기 다른 세력을 지원하며 수단 내정에 장기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단의 지정학적 위치는 주변국을 내전에 끌어들인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수단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긴 홍해 연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약 800㎞에 달하는 해안선은 세계 해운과 에너지 수송로 역할을 담당하며 중동,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홍해에서 한 두 개 항만만 확보해도 걸프 국가들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은 막강해집니다. 미국 외교정책연구소에서 아프리카 프로그램 의장을 맡고 있는 찰스 레이 전 미국 외교관은 “수단을 장악하는 자는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은 물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금과 농지라는 풍부한 자원이 불쏘시개 역할을 합니다. 수단 서부 내륙의 다르푸르 지역은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금 매장지입니다. 코카콜라 등 탄산음료의 주요 재료 중 하나인 ‘아라비아검(Gum arabic)’ 같은 희소한 자원도 수단에 집중돼 있습니다.

수단 신속지원군(RSF)이 2019년 5월 9일 수단 하르툼 공항에서 밀수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압수한 금괴를 조사하고 있다. 하르툼=로이터 연합뉴스

수단 신속지원군(RSF)이 2019년 5월 9일 수단 하르툼 공항에서 밀수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압수한 금괴를 조사하고 있다. 하르툼=로이터 연합뉴스

풍부한 금·농업자원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래픽=이지원 기자

주변국은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내전 당사자들을 지원합니다. UAE는 RSF와의 공고한 연결고리를 통해 금 유통망·항만 사업·물류 네트워크를 확보하고자 합니다. RSF는 그동안 다르푸르의 금광을 장악하고 용병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독자적 군사·경제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이곳에서 채굴된 금은 두바이를 중심으로 한 UAE 금 거래·정제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국제 표준 금으로 세탁된 후 다시 현금화돼 RSF의 무기 구매 재원으로 활용됩니다.

이집트는 RSF의 반대 측인 SAF를 강력하게 지지하는데, 이는 곧 나일강 유량 통제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카릴 알-아나니 미 조지타운대 현대아랍연구센터 교수는 “이집트가 수단 문제에 개입하는 주된 이유는 국가 안보 문제, 특히 수단의 불안정이 이집트의 생명선인 나일강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일강이 수단을 지나 이집트로 흐르기 때문에 수단의 정권 구도는 곧 이집트 물 안보의 핵심 변수인 것입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안보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균형전략을 추구해왔습니다. 수단 정부가 붕괴해 홍해 항로가 불안정해지는 시나리오는 사우디가 우려하는 최악의 사태일 겁니다. 다만 사우디 역시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SAF를 은밀히 지원해 왔으며, 외교적 지지를 제공해 왔다고 중동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외에도 이란은 드론·탄약 기술 등으로 SAF를 지원하는 한편 러시아는 민간 용병대 ‘바그너 그룹’을 이용해 RSF에 무기를 지원하고 금광 채굴권과 해군기지 건설권을 확보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아프리카에서 군사·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말이죠.

수단 엘 파셰르에 위치한 난민센터를 표적으로 삼은 포탄 잔해가 지난달 7일 땅바닥에 쌓여 있다. 엘 파셰르=로이터 연합뉴스

수단 엘 파셰르에 위치한 난민센터를 표적으로 삼은 포탄 잔해가 지난달 7일 땅바닥에 쌓여 있다. 엘 파셰르=로이터 연합뉴스

“수단 내전에 중립적 중재자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8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담 중 손을 맞잡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8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담 중 손을 맞잡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내전 초반에는 SAF가 공군 우위를 앞세워 수도 하르툼을 장악하는 듯했지만, RSF가 도시 내부 거점과 금광 자금력을 확보하며 전쟁은 장기전이 됐습니다. 여기에 외국 세력들의 지원이 더해지며 수단 내전은 더 이상 단순한 군사력 대결이 아닌 ‘누가 더 많은 후방 자원을 공급받는가’의 싸움으로 변모했습니다. “수단 내전에 중립적인 행위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주요국의 대리전 형태를 띠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 1월 취임 이후 중동·아프리카 외교에 적극 개입하는 기조를 보이며, 백악관 내부에서도 “수단 내전 중재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재부상하고 있습니다. 외교 소식통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걸프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발판 삼아 수단 내전을 종식시키려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홍해 안보를 강화하는 방향에 집중할 경우 수단 전쟁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미국의 재등판이 해결책이 되리라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이미 수단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느 국가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미국이라는 새로운 변수로 중재의 판도가 뒤바뀌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수단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이 비극의 땅에 평화의 씨앗이 싹틀 수 있을까요?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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