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은국> 광야 셔츠

신명기 8:4
“이 사십 년 동안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 셔츠

옷걸이에 걸린 희미한 체크무늬 셔츠는
사십 년을 견딘 광야를 연상하게 합니다
소매 끝이 풀리고, 단추가 눈을 깜빡여도
나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발 아래, 내 발 아래
먼지가 쌓이고 태양이 지나갔었죠
광야는 옷을 헤어지게 못 했습니다
발을 부르트게도 못 했습니다
그저 낮에는 구름이 내려앉고
밤에는 불기둥이 입술을 달구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옷은 헐지 않았고
발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입은 그 옷을
오늘도 입습니다
헤어진 소매에 손을 넣고
흰 백발처럼 퍼진 시간 속에서
몸과 마음을 천천히 펼쳐 봅니다
길이 없다, 없지만
걸어야 한다, 걸어야 합니다
하늘길을 따라, 석양이 가는 길 쪽으로
당신 발밑에 떨어진 먼지라면
내가 지나온 사십 년의 그림자라 믿으세요
나는 아직 광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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