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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없이 외국인 도·감청 허용 두고 갈라진 미국

“테러 막고 중국 견제 위해 연장을”

영장 없이 외국인을 도ㆍ감청할 수 있게 한 미국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 연장 여부를 두고 미국 사회가 갈라졌다. 테러 방지와 중국ㆍ러시아 견제 등을 위해 이 조항 효력을 연장해야 한다는 행정부와 미국인 자유 침해ㆍ사찰 우려를 제기하는 의회가 팽팽히 맞서면서다. 내년 초 702조 효력이 사라지기 전까지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1일(현지시간) 공개한 성명에서 “의회가 해외정보감시법 702조를 재승인하지 않으면 역사는 702조 권한의 소멸을 우리 시대 최악의 정보 실패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702조는 미국이 본토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 도구 중 하나”라며 재승인을 촉구한 것이다.

해외정보감시법 702조는 2001년 9ㆍ11테러를 계기로 논의가 시작돼 2008년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제정됐다. 정부가 영장을 발부받을 필요 없이 미국 밖에 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표적 감시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702조의 권한에 따라 획득한 정보 덕분에 미국은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잔혹 행위에 맞서 전 세계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에 위해를 가하려는 테러리스트 제거 △마약성 약물 펜타닐 밀수 차단 △랜섬웨어 사이버 공격 완화 등에서도 702조 정보 수집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덧붙였다.

미 NBC방송은 “한 고위 정보 관리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일일 브리핑에 있는 정보의 거의 60%가 702조에서 파생된 일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외국인의 이메일이나 전화, 문자 등 통신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접촉한 미국인 자료도 함께 수집하게 되자 논란이 커졌다. 영장 없는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하는 미국 수정헌법 4조를 위반했다는 지적 때문이다.

특히 미 연방수사국(FBI)이 2020년과 2021년 초에만 미국의 외국인 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부적절한 정보를 27만8,000여 차례나 검색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 지시로 702조 효용성을 검토해 온 대통령정보자문위원회(PIAB)도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미국인 정보와 관련해 FBI가 702조 권한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수백만 건의 정보 열람 중 위법 행위는 3건으로 확인됐지만 개인 정보를 수사 등에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의회는 법 제정 초기에는 초당적인 지지를 보였지만 정보 오ㆍ남용 사례가 계속 드러나면서 재승인 반대로 돌아서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딕 더빈 상원 법사위원장조차 지난 6월 청문회에서 “702조에 중대한 개혁이 있을 경우에만 재승인을 지지하겠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공화당은 FBI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수사 후 FBI에 대한 불신으로 702조 효력 재연장을 거부하고 있다.

의회는 702조가 만료되는 연말 전에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702조가 갱신됐던 2018년에도 상ㆍ하원 의원 3분의 1 정도가 반대표를 던졌다고 NBC는 전했다. 양당의 대치가 극심해질 2023년 연말 정국 상황을 볼 때 702조 연장 재승인안 통과는 낙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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