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속내 드러낸 트럼프… “베네수엘라 통치하며 석유 받겠다”

전격 군사작전으로 주권국가 정상 납치
미 곳곳 반전 시위에 국제법 위반 논란
“중·러 유사 행위 길 터준 선례” 비판도

니콜라스 마두로(가운데)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에게 붙잡혀 이동하고 있다. 백악관 엑스(X) 게시물 캡처

니콜라스 마두로(가운데)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에게 붙잡혀 이동하고 있다. 백악관 엑스(X) 게시물 캡처

심야에 이웃 나라 수도 한복판을 군대로 기습, 자국 이익에 거슬리는 해당국 지도자를 생포했다. 강제로 그를 끌고 온 후 현지엔 대리 세력을 세워 정권을 접수하고 ‘신탁 통치’에 나설 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상대로 3일(현지시간) 감행했고, 앞으로 하겠다고 예고한 일이다. 세계가 경악했다. 경제적 이익(석유 확보)을 챙기려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밤중 특수부대 투입

미국은 이날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 결박한 채 미국으로 압송했다. 주권 국가 정상을 사실상 납치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전복한 것이다.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 등 6명은 마약 테러 등 혐의로 미국 뉴욕 또는 마이애미 법원에서 재판받게 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전했다.

마두로 축출은 전격적인 군사 작전을 통해 이뤄졌다. 미국은 이날 오전 1시쯤(미 동부시간 기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대통령 안전 가옥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붙잡고 그들을 헬기로 실어 날라 대기 중이던 강습상륙함 이오지마함에 옮겨 태웠다. ‘확고한 결의(Operation Absolute Resolve)’로 명명된 이번 작전에서는 150대 넘는 항공기가 베네수엘라 방공망을 무력화한 뒤 특수작전부대를 태운 군용 헬기가 마두로 대통령 안가를 습격했다고 미국 관리들은 밝혔다. 미국 측 사망자는 없는 것으로 발표됐다. 베네수엘라 측에서는 최소 40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시간 문제였다. 지난해 8월부터 카리브해 배치 전력을 증강해 온 트럼프 행정부는 마약 운반 의심 선박들을 격침해 최소 115명을 죽였다.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실은 대형 유조선을 나포했고, 작년 12월 말에는 베네수엘라 항만 시설을 무인기(드론)로 때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은 일찌감치 정보 수집 및 공격 예행 연습에 착수했다. 막판 자진 사퇴 위협이 마두로 대통령에게 먹히지 않자 외교를 포기하고 군사적 개입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정권 이양까지 통치할 것”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사진.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마코 루비오(오른쪽) 미국 국무부 장관,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 함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를 위한 군사 작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트루스소셜 화면 캡처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사진.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마코 루비오(오른쪽) 미국 국무부 장관,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 함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를 위한 군사 작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트루스소셜 화면 캡처

트럼프 대통령은 과도기 직접 통치를 예고했다. 이날 현재 머물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마두로 대통령 퇴출 사실을 알리고 “안전하고 적절하며 현명한 (정권) 이양이 가능할 때까지 우리가 나라(베네수엘라)를 운영(run)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그룹(의 사람들)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운영할 것”이라며 베네수엘라 내부 세력과의 협력 가능성을 예고했지만, 그게 어떤 집단일지는 불분명하다.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 대해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내각 회의에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마두로 단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침공의 구실은 마약 밀매 정권 배후론이었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것은 방대한 석유가 매장된 베네수엘라를 미국 석유 회사들에 개방하겠다는 의지였다. 회견에서 그는 미국의 거대 석유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어가 망가진 석유 인프라(기반시설)를 복구하고, 이를 통해 원유를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팔아 베네수엘라 재건 및 과도 통치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소개했다. 미국 석유 회사 보호를 위해 미 지상군 주둔이 필요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의 서반구 영향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게 이번 공격의 핵심 목표라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은 감추지 않았다. “미국은 다시는 외국 세력이 우리 국민을 약탈하거나 우리 반구에서 적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조치에 중국의 중남미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내비쳤다. 19세기 미국 고립주의인 먼로주의의 트럼프식 확장판 재해석인 ‘돈로(도널드+먼로)주의’를 공식화한 셈이다.

“충격적 선례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개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국외 이송 모습. 트루스소셜 화면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개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국외 이송 모습. 트루스소셜 화면 캡처

이번 조치의 의외성과 전격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호전성은 우려를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필요할 경우 더 큰 규모의 2차 공격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회견에서 말했다. 미국 곳곳에서는 미국 행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정당성도 의심받고 있다. 미국 법무부 등은 마두로 대통령 부부가 마약 밀매 관련 혐의로 미국 법원에 기소된 피고인임을 강조하며 적법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선포되지 않은 터에 제3국(미국)이 유엔 회원국(베네수엘라) 정상을 그 나라 영토 안에서 무력으로 체포한 뒤 해외로 이송한 것은 주권 존중 및 영토 보전을 핵심으로 하는 유엔 헌장과 국제법 원칙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국주의를 되살리고 있다는 규탄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거론하며 “베네수엘라가 현대판 제국주의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허시는 이날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는 지역, 특히 대만이나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를 상대로 정당성에 구애되지 않고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라며 “트럼프가 엄청나게 충격적인 선례를 남겼다”고 짚었다.

이번 작전이 끝이 아닌 시작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킨 아프가니스탄이나 리비아, 이라크 등의 전철을 밟게 될 경우 세계 에너지 및 식량 시장이 흔들리고 서반구 전역에서 더 많은 이민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샌프란시스코= 박지연 특파원 jyp@hankookilbo.com

en_US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