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진정하고 릴렉스~”…책임에서 발 빼는 FIFA 회장의 궤변

강은영 기자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기자회견서
미국의 소말리아 심판 입국 거부에…
“유감스럽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이란 비자 문제로 논란에 부딪히자…
“미국서 경기하도록 해결” 자화자찬
BBC “FIFA, 월드컵 운영 통제력 잃어”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11일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미국 비자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2026 북중미 월드컵 개최국인 미국의 심판 입국 거부 등 논란에 궤변을 늘어놓아 도마에 올랐다.

인판티노 회장은 11일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번 대회 개막 기자회견에서 “그냥, 진정하고 릴렉스하시라”며 여러 논란을 별것 아니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FIFA는 이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발급 및 이란과의 전쟁에 따른 여파, 과도하게 치솟는 티켓 가격 등으로 논란의 중심이 섰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란 축구대표팀 비자가 발급되긴 했지만 조별리그 경기 전날 미국에 입국해 24시간만 머무는 제약에 걸렸고, 이라크 공격수 아이만 후세인이 공항에서 7시간 넘게 억류돼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 경기를 주관할 예정이던 소말리아 출신 오마르 아르탄 심판은 입국이 거부됐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무려 11시간 동안 심문을 받은 뒤 추방당한 것.

더 황당한 건 FIFA의 처사였다. FIFA는 곧바로 52명의 월드컵 참가 심판 명단에서 아르탄 심판을 제외했다. 그러면서 “비자 등 문제는 FIFA가 아닌 월드컵 개최국 소관”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결국 아르탄 심판은 튀르키예를 거쳐 소말리아로 돌아갔다.

인판티노 회장은 이러한 논란을 가볍게 웃으며 “불행한 일”로 치부했다. 그는 “소말리아 심판에게 일어난 일은 유감스럽다”며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란 대표팀에 대한 비자 문제에 대해서도 “안타깝게도 우리 세계는 매우 공격적인 세상이고, 안보가 무엇보다 우선시된다”며 “내려진 결정을 존중해야 하며, 제가 ‘진정하라’고 말하는 건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부와 경찰력을 지배할 수 있는 이 아니다”며 “우리는 스포츠 단체다. 우리가 가진 수단을 최대한 활용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은 벨기에, 이집트, 뉴질랜드와 함께 G조에 속해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미국(잉글우드·시애틀)에서 치른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 여파로 베이스캠프를 미국에서 멕시코로 옮기는 등 고초를 겪었다. 미국 비자를 극적으로 받긴 했지만 경기 하루 전날에만 입국해 바로 떠나야 하는 실정이다. 월드컵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FIFA, 입국 거부 개최국에 자격 박탈하기도

지난해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영국 BBC는 인판티노 회장의 해명을 꼬집었다. BBC에 따르면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영국 정부는 북한의 존재가 외교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해 입국을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FIFA는 영국 정부에 ‘월드컵 개최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경고 서한을 보냈고, 영국은 이를 받아들여 북한의 입국을 허용했다.

실제로 2023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최국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후 FIFA로부터 개최권을 박탈당했다.

그럼에도 인판티노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옹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헌신과 참여가 없었다면 미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란의 월드컵 참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그들이 참가할 거라고 약속했다”며 “이란이 경기할 수 있도록 내가 아니면 누가 보장해 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자화자찬했다.

아울러 천정부지로 치솟은 티켓 문제에는 궤변으로 일관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뭔가 잘못했다면, 북미에서 티켓을 판매하는 모든 사람들도 잘못한 것”이라고 황당한 주장을 내놨다. 또 캘리포니아, 뉴저지, 뉴욕 등에서 시행한 FIFA 티켓 가격 조사에 대해 “해당 조사는 3,000건이 아닌 3건의 불만에 근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심지어 그는 가격 책정 구조가 “북미 시장에 적절하다”면서 “수요가 전례 없이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피력했다.

BBC는 인판티노 회장의 기자회견에 비판을 가했다. 매체는 “그의 말을 듣다보면 이번 월드컵을 둘러싼 논란이 마치 사소한 일처럼 느껴질 정도”라며 “FIFA는 월드컵 운영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특히 반(反)이민 정책을 핵심 기조로 삼는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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