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美 AI·에너지·무기 구매하는 국가들과 친미 경제블록 구축”
국무부 5년 전략 계획서 ‘상업 외교’ 천명
방산 접근성 미끼 동맹 국방비 증액 유도
아메리카 패권 구상 ‘돈로 독트린’ 공식화

지난해 10월 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국빈 만찬장에서 열린 안티파(좌익 성향 반파시즘 연합체) 관련 원탁회의 도중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이 앞으로 5년간 자국 인공지능(AI)·에너지·무기를 구매하는 국가들과 ‘친미(親美) 경제 블록’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국 방위산업 접근성 강화를 미끼로 동맹들의 국방비 증액을 유도하겠다는 구상도 공개했다.
동맹들 돈으로 美 재산업화
미국 국무부는 15일(현지시간) 공개한 ‘2026~2030 회계연도 기관 전략 계획(ASP)’에서 “모든 양자 관계와 협상에서 상업적 거래를 추진함으로써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미국 기업 및 설루션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미국 기업 및 수출을 활용하는(leverage) 친미 국가들의 강력한 경제 블록을 창출하겠다”고 알렸다. 동맹 및 우방 관계를 맺는 데 ‘상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명시한 것이다. ASP는 향후 5년간 미국이 추구할 중기 외교 전략이 담긴 문서다.
이 문서에 따르면 친미 경제 블록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국무부는 “이 블록 전반에 걸쳐 새로운 경제 안보 합의를 확립하고 핵심 인프라(기반시설)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산업과 기회를 창출하려 한다”며 “(이 경제 블록이) 미국 테크놀로지 스택(기술 요소 집합)과 국방 시스템을 구매함으로써 미국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에 자금을 대고 21세기 내내 미국의 경제적, 기술적 리더십이 지속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무부에 새로 맡겨진 임무는 ‘상업 외교(commercial diplomacy)’다. 국무부는 전 세계 해외 공관들에 “미국 기업들이 외국 정부의 핵심 프로젝트 계약과 입찰을 따낼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주문하며 AI, 에너지, 무기체계, 자본 시장, 첨단 제조업 등을 집중할 분야로 특정했다. 더불어 “중국 기업이 입찰 참여를 차단하거나 대체하는 데 적극 개입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15일 공개된 미국 국무부 ‘2026~2030 회계연도 기관 전략 계획(ASP)’의 표지. 국무부 공개본 캡처
이 문서에서 국무부는 한국 등 동맹국들을 상대로 국방 지출 확대를 거듭 촉구하기도 했다. 인도·태평양 지역과 관련, “우리는 미국의 국력에 기여하면서도 미국의 희생을 대가로 하지 않는 동맹·우방국들과의 긴밀한 경제·군사 유대를 추구한다”며 “국방부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이들에게 자체 국방비 증액과 억지(deterrence) 수단 투자를 독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대급부로 미국은 동맹국에 재활성화된 우리 방위산업 기반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맹에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되 자국이 보유한 첨단 방산 기술 전수를 유인책(인센티브)로 제시한 셈이다. 기술 이전이 무기 구매의 보상으로 제공되는 만큼 결국 동맹국이 늘린 방위비로 미국 무기를 사들이라는 요구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재외 공관에 기업 지원 당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서반구(남북 아메리카) 패권 장악 구상을 지칭한 신조어 ‘돈로 독트린’을 공식화한 것도 이번 국무부 ASP의 특징이다. 돈로 독트린은 1823년 제임스 먼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유럽의 미주 대륙 간섭을 거부하며 천명한 외교 정책 ‘먼로 독트린’에 트럼프 대통령 이름(도널드)를 합친 합성어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 미국 일간 뉴욕포스트가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국무부는 “새로운 ‘돈로 독트린’ 아래 미국은 반미(反美) 국가 및 불량 국가들을 굴복시키고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새로운 안보·경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적었다. 특히 파나마운하 등 중남미 전략 요충지에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됐다고 지적하며 필요하면 미국의 경제·외교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달 초 백악관이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쓴 기색도 역력하다. 국무부는 “우리는 동맹국·우방국·적대국 모두를 상대로 인도·태평양이 평화롭고 번영하기를 미국이 강하게 바라고 있으며 전쟁이나 정권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시아 강대국인 중국과의 소통 채널을 계속 열어 놓고 오해와 위험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