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견뎌낸 시간… 회화로 확장된 동그란 길

[책과 세상]
김철순 시·김세현 그림 ‘사과의 길’

큰바람이 햇볕과 비를 맞아 자라고 있는 어린 열매를 흔들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큰바람이 햇볕과 비를 맞아 자라고 있는 어린 열매를 흔들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큰바람이 지나고 아기 사과는 볼이 붉은 잘 익은 사과가 됐다. 문학동네 제공

큰바람이 지나고 아기 사과는 볼이 붉은 잘 익은 사과가 됐다. 문학동네 제공

잘 익은 사과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린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작은 열매를 키워내기까지의 묵묵한 시간이 담긴 김철순 시인의 동시가 그림책 ‘사과의 길’로 다시 태어났다. 소박한 일상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사유하게 하는 동명의 시와, 동양화를 전공한 김세현 작가의 그림이 만난 책이다.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철순 시는 작은 움직임에서 사과의 한살이를 관통하는 서사를 끌어낸다. 엄마가 사과를 깎는 장면으로 시작해 아이가 사과 껍질로 만들어진 ‘길’에 들어서며 현실과 상상이 맞물린다. 아이는 사과꽃이 피고 지는 계절, 햇볕과 비가 열매를 키우는 시간, 큰 바람이 어린 열매를 위협하는 자연의 엄격함을 차례로 마주한다. 사과가 되기까지의 견딤을 아이의 걸음과 연결한 시는 상상의 길을 걷는 동안 자연의 순환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한다. 껍질이 ‘툭’ 끊어지며 길이 닫히는 순간 현실의 맛으로 돌아오는 결말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시인은 밭에 심은 사과나무 두 그루에서 시의 영감을 얻었다. 사계절을 견뎌내는 나무를 보며 사과도 살아내고 있음을, 삶에도 좋은 계절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시를 그림으로 옮긴 김세현 화가는 방정환의 ‘만년샤쓰'(1999), 백석의 ‘준치 가시'(2006) 등 그림책사의 이정표가 된 작품에 참여해 온 작가다. 붉은 사과 껍질, 햇볕이 드리우는 온도감 등을 황토와 먹, 호분과 구아슈 등 동양화 재료로 실감 나게 구현했다. 전통 회화의 재료와 서사적 감각을 결합해 온 그는, 시가 열어 준 ‘길’을 회화적 이미지로 확장하며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인내를 깊은 울림으로 담아낸다.

사과의 길·김철순 시·김세현 그림·문학동네 발행·40쪽·1만6,800원

사과의 길·김철순 시·김세현 그림·문학동네 발행·40쪽·1만6,800원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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