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조선 보호’ 약속… ‘이란발 인플레’ 자승자박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외 1명

운임·보험료 올라 호르무즈 통행 급감
장기화하면 물가·국채 금리 치솟을 듯
“이란, 美 비용 늘려 트럼프 철수 유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양자 회담을 계기로 미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취재진을 만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을 시켜 호르무즈해협을 지나가는 유조선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원유 운송로의 병목이 이란의 공격 위협에 막혀 유가가 급등하는 바람에 꺼내 든 고육책이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치솟는 것은 유가만이 아닐 공산이 크다. 대(對)이란 공습 강행의 결과인 만큼 자승자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거꾸로 행보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걸프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해운, 특히 에너지 운송에 대해 당장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정치적 위험 보험 및 보증을 제공하라고 미국 국제금융개발공사(DFC)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나흘째 이어진 미국의 대이란 군사 작전과 이란의 반격으로 호르무즈해협 주변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며, 해운 운임·보험료가 가파르게 인상되거나 계약 해지가 속출하고 해협 통행이 급감하자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책임지는 요충지다.

긴급 대응에 나선 배경은 유가 폭등이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중동 지역 에너지 수송 차질 및 이란전(戰) 장기화 우려 탓에 국제 유가는 사흘째 뛰었다. 이날 영국 런던 ICE(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81.4달러를 기록해 전장보다 3.66달러(4.71%) 올랐고,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33달러(4.67%) 상승한 배럴당 74.5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 유가 상승은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밀어 올렸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미국의 일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3.109달러를 찍었는데,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 말기보다 높은 수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며 유권자들을 설득하려는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유가 안정은 트럼프 행정부 물가 대책의 핵심이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고(高)물가를 공략하며 자신이 재집권하면 신규 시추로 유가를 내려 물가를 잡겠다고 장담했다. 지난달 27일 텍사스주(州) 항구의 원유 저장탱크를 배경으로 “물가를 끌어내리려면 에너지 비용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고서는 몇 시간 뒤 미국은 대이란 공격을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자기 발목을 자기가 잡은 셈이다.

병목 뚫릴까

호르무즈해협에 있는 이란 해안과 케슘섬 일대의 조감사진. 2023년 12월 10일 항공기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수습책은 효과가 없지 않았다.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에너지 수송로를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뒤 한때 9% 넘게 올랐던 유가가 상승폭을 줄였고, 뉴욕 증시도 장 초반 급락세를 일부 만회했다.

그러나 전쟁을 빨리 끝내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직면해야 할 상황은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산하 경제분석기관 블룸버그이코노믹스가 중동 지역 에너지 시설이 훼손되고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해 배럴당 108달러에 달하는 국제 유가가 올해 4분기까지 지속되는 심각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분석해 보니, 연말까지 미국 물가 상승률이 약 0.8%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는 3%대 연간 물가 상승률을 의미한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며 통화 정책 방향이 도리어 금리 인상 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컨설팅업체 KPM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다이앤 스웡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서비스 물가 상승이 멈추지 않고 관세 여파도 나타나려는 참에 유가 상승이 겹쳤다”고 말했다.

이란의 목표는 미국의 전쟁 비용을 늘려 트럼프 대통령이 철수를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해군 부사령관 모하마드 아크바르자데는 자국 파르스통신에 “호르무즈해협이 안전하지 않다는 반복 경고를 무시한 10척 이상의 유조선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불에 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조선을 군사력으로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이란의 무인기(드론) 공격이 몇 차례만 성공해도 호르무즈해협을 사실상 폐쇄 상태로 유지하기에 충분하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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