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경색, ‘뉴노멀’ 되나… 트럼프, 대이란 봉쇄 장기화 시사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외 1명

“자금난 주시”… 긴장 관리 가능성
합의 눈높이 낮췄지만 출구 사라져
강경파 득세한 이란은 해협 인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미 뉴저지주 모리스타운 공항에서 에어포스원(전용기)에 탑승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모리스타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對)이란 해상 봉쇄 장기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호르무즈해협을 당장 열어 중동 산유국 원유 수송을 정상화하겠다는 욕심을 버린 듯한 모습이다. 이란도 해협 봉쇄를 쉽게 풀어 주려는 기색이 아니다. 2월 말 미국·이란 전쟁 발발 뒤 펼쳐진 호르무즈해협 경색 국면이 새로운 일상, 즉 ‘뉴노멀’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다.

분노 자제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와의 통화에서 분쟁 상대 이란에 대해 “우리는 로키로 대응하고 있다(We are low keying it)”고 밝혔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게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액시오스는 일주일 전만 해도 대규모 대이란 군사 작전 재개로 기울었던 트럼프 대통령 마음이 당분간 긴장을 완화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미국 당국자들의 얘기를 전했다.

협상은 교착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과의 협상은 완전하지 않다(only semi-negotiating)”고 인정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이날 테헤란에서 기자들에게 중재국을 통한 메시지 교환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타결을 기대했다. 1일 밤 중동 국가 요청으로 이란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취소했다고 발표하며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을 위한 신속한 합의를 이란에 촉구했다. 이후 해협 연안국인 이란과 오만 간 안전 항로 협의가 합의에 근접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란이 전날 미군 철수, 전쟁 피해 배상 등 6가지 대미(對美) 요구를 내놓으며 전망이 어두워졌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새로운 군사적 위협을 거론하지도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았다는 게 액시오스 전언이다. 그는 심각한 인플레이션(고물가)에 시달리고 군인들에게 줄 돈도 없는 이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가 이란 정권의 경제난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액시오스는 “이란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새 군사 공격을 지시하기보다 경제적 압박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해석했다.

정신 승리

지난달 3일 이란 테헤란에서 모흐센 레자이 당시 최고지도자 군사고문이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사한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역대 최장수 총사령관 출신인 레자이는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것으로 9일 전해졌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자기 합리화에 가깝다. 11월 중간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열리기만 하면 개전 목표였던 이란과의 비핵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도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다. 장기전을 각오한 이란의 요구 강화가 그의 출구 선택지를 줄였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협 재개방을 향한 조바심을 내비치는 바람에 이란에 약점이 잡혔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인내심을 갖고 있으며 휘발유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하는 한 외교적 난관을 극복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WSJ에 말했다.

반면 더 강경해진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약속 이행 담보용 볼모로 십분 활용하리라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9일 이란은 최고국가안보회의 신임 사무총장으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역대 최장수 총사령관 출신인 초강경파 인사 모흐센 레자이를 임명했다. 이란 안보 문제 전문가인 하마드레자 아지지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임명에 협상을 주도해 온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를 견제하려는 최고지도자의 의도가 반영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테네시대 채터누가캠퍼스 교수 사이드 골카르도 “레자이의 승진은 이란 내부에서 혁명수비대가 주요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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