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공개된 엡스타인 자료 보니… 곳곳 ‘통째로 먹칠’
9000페이지 넘는 새 자료 공개됐지만
‘피해자 보호’ 이유로 일부 게시 지연돼
트럼프 사진 담긴 파일 한때 삭제되기도

미국 법무부가 19일 공개한 엡스타인 자료 가운데 검은색으로 먹칠된 일부 파일들. AP 연합뉴스
미국 법무부가 19일(현지시간) 2019년 사망한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사건의 수사자료 공개를 시작했다. 그러나 피해자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일부 파일의 공개를 미룬 데다, 검은색으로 ‘먹칠’돼 공개했다고 보기 어려운 자료도 다수 포함된 터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임기 시작 후 1년을 맞이하는데도 엡스타인 사건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클린턴·촘스키 등 유명인사 다수 포함
미 법무부는 이날 ‘엡스타인 투명성법’에 따른 공개 대상 자료 일부를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했다. 블룸버그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19, 20일 양일간 약 9,675페이지에 달하는 자료가 공개됐다. 이 가운데에는 사진 등 비언어 미디어자료가 4,928페이지로 가장 많았고, 법정기록이나 금융기록 등도 포함됐다.
법무부가 공개한 사진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나 가수 마이클 잭슨,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등 유명인사들이 담겼다.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사진 속 여성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앉아 있거나 함께 욕조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파일 공개 후 이목이 집중되자 클린턴 측 앤젤 우레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클린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법무부가 19일 공개한 엡스타인 자료 중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한 여성의 허리에 팔을 두른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일부 자료는 피해자들의 신원 보호를 이유로 공개가 연기됐다. 토드 블랜치 미국 법무부 차관은 이날 미국 폭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며 “몇 주 안에 더 많은 자료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지연·검열’ 이유 공세
민주당은 초당적 합의로 마련된 정보 공개 법률을 트럼프 행정부가 어기고 있다며 공세에 나섰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같은 날 성명에 “의회가 통과시키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내용)은 분명하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문서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30일 이내에 공개해야 했다”고 썼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및 (미국 법무장관인) 팸 본디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혈안이 됐다”고 덧붙였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19일 공개된 엡스타인 파일 공개 자료 속에서 ‘트럼프’를 검색하자 ‘결과가 없다’는 문구가 출력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게시된 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자료에 대한 검열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은 오히려 커지는 모양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게시된 엡스타인 사건 관련 자료 가운데 119장은 검은 칠로 완전히 가려졌다. 20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이미지를 포함한 16점의 공개 자료가 한때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삭제되며 비판이 이어졌다. 야당인 민주당에선 법무부의 이런 행위가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을 명백히 어긴 것이라면서 관련자들의 탄핵과 기소까지 거론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잘못된 대응으로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공화당전국위원회(RNC)에서 소통 책임자를 맡았던 더그 헤이는 WSJ에 “이날 게시된 자료를 미리 공개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큰 혼란 한 번 겪고 흘려 보내면 됐을 텐데 (트럼프 행정부가)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극적 대응이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결과만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