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사태’ 권도형에 “희대의 사기” 꾸짖은 美 법원…징역 15년 선고
판사, 권씨 향해 선고 후 “아직 젊다” 격려
‘최대 130년형’ 형량 거래 통해 크게 낮춰
최종 형량 절반 복역 후 한국 송환 가능성도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씨가 지난해 3월 24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사법당국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포드고리차=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법원이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34) 테라폼랩스 설립자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기소될 당시 예상됐던 최대 130년의 징역형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권씨는 지난 8월 미국 연방검찰과의 플리바게닝(형량 거래)을 통해 본인의 유죄를 인정했다.
구형량보다 높은 15년형 선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폴 엥겔마이어 미국 뉴욕남부연방지법 판사는 사기 및 공모 혐의로 기소된 권씨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권씨는 스테이블코인 테라·루나를 발행해 판매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을 속여 자금을 유치한 혐의를 받아왔다. 테라폼렙스는 ‘테라 프로토콜’이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테라가 미국 달러에 연동되도록 설계했다고 주장했지만, 2022년 5월 테라가 크게 폭락하며 총 400억 달러(약 59조 원) 규모의 투자자 피해를 유발했다.
미 연방검찰은 2024년 12월 몬테네그로에서 도피 중이던 권씨의 신병을 넘겨받아 지난 1월부터 그에 대한 재판을 벌여왔다. 권씨는 당초 증권사기와 통신망 이용 사기 등 9개 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 권씨는 최대 징역 130년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던 권씨는 지난 8월 돌연 입장을 바꿔 형량 거래를 받아들였다. 이후 권씨가 사기 공모 및 통신 사기 혐의 각 1건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연방검찰은 징역 12년형을 구형했다.
다만 법원은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규모 면에서 보기 드문 희대의 사기 사건(a fraud on an epic, generational scale)”이라며 “연방 기소 사건 가운데 이보다 피해 규모가 더 큰 사건은 거의 없다”고 권씨를 강하게 질책했다. 이어 검찰이 형량 거래를 통해 구형량에 상한을 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짚은 뒤 양형기준에 비춰봐도 15년형은 매우 적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검사를 향해 “형량에 상한을 정한 것을 두고 정치적 압력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검사와 변호인 모두 이를 부인했다.
권씨 “피해자들에게 죄송”
이날 노란색 수의 차림과 함께 수갑을 차고 재판에 참석한 권씨는 검찰이 전날 제출한 피해자 측 청원서 낭독 내용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덤덤한 표정으로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권씨는 영어를 사용한 법원 진술을 통해 “그들(피해자)의 이야기는 고통스러웠고, 나 자신이 그들에게 끼친 엄청난 손해를 떠올리게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앵겔마이어 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1시간 넘게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권씨를 꾸짖었다. 그는 “테라 투자자들은 카리스마적인 리더로서 당신을 믿었는데, 당신은 극단적인 신뢰를 남용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선고를 마친 뒤에는 권씨가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며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젊다.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씨는 “감사합니다, 재판장님”이라고 짧게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무부는 권씨가 최종 형량의 절반 이상을 복역하고 합의된 조건을 준수할 경우 국제수감자이송 프로그램을 신청하더라도 이를 반대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에 따라 권씨가 형량의 절반을 복역한 이후 본인 요청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권씨는 한국에서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됐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