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개입 안 한다’던 美, 엔화 매수 나서…기술주 급락 ‘빨간불’

미국 메릴랜드 캠프데이비드에서 지난달 31일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메모지에 ‘할 일(To Do)”이라는 문구 아래 “일본 엔(JPY) 매입 50억~100억 달러”라고 적혀 있다. 캠프데이비드=로이터 연합뉴스
문재연 기자
FT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재무부 대신 매입”
미국이 15년 만에 일본과 손잡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 엔화 가치 하락을 저지했다. 1995년 이후 국가적 위기 등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환율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온 미국이 자국 국채시장 방어를 위해 적극적인 개입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화 50억~100억 달러 매입”…로이터, 미 재무장관 메모 공개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미일 양국은 3일 엔화 방어를 위한 ‘공동 대응(joint action)’ 방침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장관은 여기서 미일 공조 속에서 진행된 외환 개입을 설명하고, 과도한 엔화 약세에 맞서겠다는 양국의 의지를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엔화 방어를 위한 미일 양국의 환율 개입은 지난달 30~31일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지난달 30일 일본이 약 530억 달러(약 76조6,4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기습 엔화 매수에 나서자 미 재무부도 은행들에 환율 호가를 문의했다. ‘레이트 체크’라고 불리는 당국의 환율 문의는 통상 외환시장 개입에 앞서 이뤄지는 절차로 여겨진다. 이후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지난달 31일 미 재무부를 대신해 유로화를 팔고, 엔화를 사들였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美, 15년 만의 환율 공조…통화 개입의 ‘뉴 노멀’?
미국의 엔화 매수는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일본과 엔화 환율 조정을 위해 공조에 나선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15년 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일 환율 공조가 수십 년 만에 보지 못한 수준으로 긴밀해지는 ‘뉴 노멀’이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개입이 일본은행(BOJ) 금리 동결 발표 전후 이뤄지면서 양국이 통화정책까지 암묵 조율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적극 개입에 나선 배경엔 자국 국채시장 방어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올해 약 20조 엔(약 183조5,200억 원)을 쏟아붓고도 엔저를 막지 못했다. 추가 방어에 나서려면 보유한 미 국채의 매각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인 일본의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금리)은 오른다. 이는 결국 미국의 모기지·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번진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로선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뉴욕연은이 달러가 아닌 유로화를 판 것도 미국 정부가 스스로 달러를 내다 파는 모양새를 피해 달러·미 국채 신뢰도와 가치는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만 상승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효과 단기적…2024년 블랙먼데이 재현” 우려도
다만 시장에선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회의론이 우세하다. 미일 금리차라는 구조적 원인이 그대로여서다. 실제 일본이 4~5월 월간 기준 사상 최대인 11조7,000억 엔(약 106조7,256억 원)을 투입했을 때도 엔화는 두 달 만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엔화 가치 급등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촉발해 2024년 8월 글로벌 ‘블랙 먼데이’ 급락장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요나스 골터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엔화 약세 베팅(숏 포지션)이 상당히 쌓여 있어 2024년 여름과 유사한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제임스 스탠리 포렉스닷컴 수석 시장 분석가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나스닥100 지수 이면에 숨겨진 레버리지로 자리 잡았다”며 급격한 엔화 강세로 고평가된 기술주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투자 전문 플랫폼 스톤X에 말했다.
- 문재연 기자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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