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입 연 최순실 “그때 박근혜 부탁 거절했더라면”… ‘비선실세’의 회한

이유지 기자

[‘국정농단 핵심’ 최서원씨 단독 인터뷰]
징역 21년 형 확정… 11년째 교도소 복역
척추 수술 감염 등에 지난달 형집행정지
“국민 마음 무너뜨려 죄송…역사적 잘못”
朴에 섭섭함 토로…”심부름꾼 폄하 비수”
“대통령 취임 직후 떠나려…朴이 잡았다”
삼성 뇌물 ‘묵시적 청탁·경제공동체’ 항변
檢·특검 수사 지적…”한동훈 보수 재건?”
핵심 관련자들 사면·복권…”형평성 맞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중형이 선고돼 11년째 수감 생활을 하다 최근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일시 석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과거로 돌아가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진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던 그가 처음으로 말을 멈췄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을까.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건1의 핵심 인물,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파면을 불러온 의혹의 당사자 최서원(70·개명 전 최순실)씨. 수감 생활 중 칠순의 환자가 된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대학 시절, 그 어린 날로 돌아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회의실에서 변호인 배석하에 최씨를 만났다. 사건이 불거진 지 10년 만에 언론에 입을 연 그는 “날로 건강이 악화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며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게 씌워진 비난과 오명을 다는 아니더라도 마지막으로 지울 것은 지우고 가려 한다”고 털어놨다. 국정농단 주요 관련자 중 현재 수감 중인 이는 최씨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씨는 2020년 6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18년에 벌금 200억 원, 추징금 63억여 원을 확정받았다. 이화여대 입시·학사비리 관련 징역 3년을 더하면 총징역 21년으로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햇수로 11년째 옥살이를 해온 그는 척추 수술 부위 감염과 패혈증 우려 등 건강상 이유로 지난달 2일 세 번째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입원했다. 형기 만료는 2038년 예정이나,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유치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

인터뷰에서 최씨는 회한과 항변 사이를 오갔다. “제가 정점이 되어 문제가 돼선 안 됐던 일이 벌어진 점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다”고 사죄의 뜻을 밝히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단 점과 삼성그룹 관련 뇌물 혐의 등을 두곤 억울함을 토로했다. “국정농단에 개입된 것에 무거운 역사적 책임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본보는 헌정사상 중대 사건인 국정농단의 당사자로서 최씨가 직접 밝힌 기억과 주장을 담은 증언을 기록하되, 유죄 확정된 사실관계와 관련해선 별도 기사로 짚는다.

다음은 최서원씨와의 일문일답.

왜, 지금 입을 열게 됐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중형이 선고돼 11년째 수감 생활을 하다 최근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일시 석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2016년 이후 10년 만의 첫 언론 인터뷰다.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나.

“형집행정지를 세 번 받았는데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재활 치료 기회 없이 수술만 하고 들어가 수감 생활을 하다 보니 무리가 가서 병이 병을 낳았다. 사실 앉아 있기도 어려운데 현재 척추 염증이 뼈마디에 심하게 생겨 항생제 주사를 하루 세 번 맞고 있다. 이 치료가 끝나야 지금 보이는 마비증세를 치료할 수 있어 첫 번째 뼈골절 및 협착증, 디스크 수술 등을 기다리는 중이다. 처음엔 마비로 허리가 안 펴지고 못 걸었다. 이 상태로 교도소에 돌아가면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만기를 채우면 안에서 죽을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자식, 손주들한테 폐만 끼치고 사는 게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애들이 고난을 받고 있고 검찰에서 들었던 ‘3족을 멸한다’는 말이 정말 현실로 다가왔는데, 내가 죽으면 평생 손가락질 받고 살겠구나 싶다. 좌우가 극히 갈라진 상황에 여론의 뭇매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 그동안 인터뷰를 거부해 왔지만, 정신이 있을 때 내게 쏟아졌던 비난과 오명을 다는 아니더라도 마지막으로 지울 것은 지우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죄를 지었다 해도 10년을 살았으면 국민께서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해 용기를 냈다.”

최서원(왼쪽 사진·개명 전 최순실)씨와 최씨 딸 정유연(개명 전 정유라)씨가 2017년 6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이동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생활비에 병원비도 드는데 돈을 벌 데가 없어 딸(정유연씨·개명 전 정유라)이 월세를 못 내고 주변에 빚이 쌓였다. 이에 구속되면서 손주들이 아동보호시설로 갈 뻔했다. 유치원을 운영했던 강남구 미승빌딩도 126억 원에 매각해 추징금과 각종 세금을 치렀는데, 그 뒤 380억 원에 팔리더라. 최근엔 병원비로 들어온 보험금 300여만 원이 다음 날 바로 압류되기도 했다.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걸 가혹하게 끊어버리니 딸에게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어 몹시 어렵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2016년 10월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첫 검찰 출석 때 “죽을죄를 지었다”고 했으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태도가 바뀌었다.

“죄명이 뭔지도 모르고 진실을 말하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했는데 와보니 아니더라. 첫 검찰 출석 당시 깔려 죽는 줄 알았다. 지금도 그날은 트라우마다. 일단 나 때문에 나라가 뒤집힐 정도로 시끄러워진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한 것이지 내 죄명에 대해 잘못했다고 얘기한 건 아니었다. 법치국가에서 그래도 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면 어떤 라인이라도 설치해 보호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나중에 검찰에 ‘이렇게 무방비로 해놨다가 잘못하면 사람이 죽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더니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답이 돌아오더라.”

-지금에 와서 국민 앞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제가 정점이 되어 문제가 돼선 안 됐던 일이 벌어진 점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국정에 개입해 농단하려던 것은 아니고, 정치적 야망도 없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돕게 됐고, 계속 박 전 대통령 곁을 떠나고자 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을 옆에서 잘못 모시는 바람에, 고(故) 육영수 여사와 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국민의 마음을 무너뜨렸다는 점엔 역사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와 최서원, 40년 인연

고(故) 최태민 목사가 설립한 새마음갖기 운동본부 관련 새마음 봉사단 총재였던 박근혜(오른쪽) 전 대통령과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장이었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1979년 6월 10일 서울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에 참석한 당시 모습. 두 사람 모두 20대 시절.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 전 대통령과 언제 관계가 시작됐고, 어떻게 돕게 됐던 건가.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으로 아는데, 돌아가시고 그 아픔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그때 여러 사람이 위로 편지를 보냈고, 아버지(고 최태민 목사)도 보냈다고 들었다. 그중 박 전 대통령이 몇 사람에게 화답해 인연이 된 것으로 안다. 이후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으면서 새마음 봉사단 총재였던 박 전 대통령과 알게 됐다.

한동안 교류가 없다가 박 전 대통령이 1998년 15대 재보궐선거에 국회의원 출마하면서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우리를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이었고, 애국심이 분명해 그 가치관에 동참하게 됐다. 본래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이 있는 경북 문경으로 지역구를 받았다가, 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 대구 달성으로 바뀌었다. 전임 의원이 상대 후보에게 지구당 조직을 다 넘긴 상황이라 맨바닥에서 싸워야 했다. 아버지의 이름이 굴레가 돼서 내가 나서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궁여지책으로 정치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당시 남편 정윤회씨가 돕게 된 것이다.

그때 저는 집에서 식사를 챙기고 저녁마다 일정을 확인하고 어디를 갔으면 좋겠다 등 조언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기반이 없으니 현장을 뛰기 시작해 저녁에 오면 발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가족이 없다 보니 어머니와 함께 따뜻함을 느끼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드렸다. 여론조사는 하루 전까지도 다 지는 걸로 나왔는데, 결국 아무도 생각지 못한 기적의 역전승이 됐다.”

-최태민 목사의 딸이기에 나설 수 없었고, 그래서 남편을 박 전 대통령 옆에 세웠다고 했다. 정치적 욕심, 사익 추구가 없었다고 할 수 있나.

“국민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크다. 권력이나 돈을 생각했다면 그때 돕지 않았을 거다. 달성은 이미 진 경기라고 다들 판단했고, 당시 지역위원장조차 도망갔다. 권세를 따질 때가 아니라 누가 붙잡고 희생하느냐의 싸움이었다. 권력을 탐할 여유조차 없었고, 그때는 박 전 대통령에게 그리 권력이 있지도 않았다. 승리했을 때조차 사람들이 나오지 말라고 해 축하할 수도 없었다. 이용당하고 쓰레기통에 처박힌 기분에 우울증이 오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특사 후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을 두고 ‘사적 심부름을 할 사람이 필요했고, 사심 없이 도와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검찰 조사를 받으며 놀랐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의혹이 불거지고 독일에서 들어오기 전 박 전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왜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됐냐’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사익을 취하거나 돈을 받은 것도 없고 주변 인물들이 좋다고 해서 추천한 것뿐이니 가서 소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귀국하기도 전에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사익 편취자’ ‘대통령을 속인 자’로 낙인찍히니 수사도 여론도 그 방향으로 갔다. 그 문제는 박 전 대통령에게 굉장히 섭섭하다. 왜 들어오라고 한 건지, 최소한 하루이틀 해명할 기회를 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30~40년 신뢰를 갖고 거의 한 몸이 돼서 도왔다. 한순간에 심부름꾼, 몸종이었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게 비수를 꽂는 것 같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올해 5월 3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추경호 대구시장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 필요에 응한 것이라고 해도 비선실세 관련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공식 직함을 갖고 도울 생각은 하지 않았나.

“대통령이 된 뒤 나는 떠나려고 했다. 취임하고 청와대에 처음 들어갔는데 가족같이 지내던 사이에 호칭도 어색하고, 사람을 짓누르는 분위기여서 이상한 연민도 들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판단에 독일에 집도 사고, 딸이 좋아하는 승마 관련 말 사업을 하며 뒷바라지하려 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잡았다. ‘아무도 없는데 가면 어떡하나, 지금처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니 자리 잡을 때까지만 도와주고 가면 안 되겠느냐’는 얘기였다. 동생들과도 사이가 안 좋아 편하게 부탁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원인 제공은 박 전 대통령이 한 셈이다. 내가 원했다면 비서관이든 뭐든 직책을 받았을 텐데 유치원 하던 사람이 무슨 정치 야욕이 있겠나.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청와대 자체가 싫었고, 아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았다. 그랬으면 비선실세라는 얘기는 안 들었을 텐데. 왜 그렇게 혼자서 멍청했나 후회된다.

박 전 대통령이 워낙 청와대에서 오래 생활한지라 눈높이가 까다로웠고, 첫 여성 대통령이기도 해서 의상이나 연설문 관련해서도 요청이 와 조언하게 된 것이다. 남성 비서관들이 올리는 게 거의 통과가 안 됐다. 화장품은, 옷은 뭘 좋아하는지 모든 걸 나한테 물어보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난 눈에 띄어서도 안 됐다. 그만큼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여당이었던 당시 새누리당마저 등을 돌렸다.

“무력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가 당시 여당 의원들에게 신문을 받았는데 참담했다. 야당보다 더 탄핵에 앞장서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사람이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는 얘기가 턱밑까지 올라와 아예 대답을 않기도 했다. 그때 박 전 대통령을 밀어붙인 사람들이 다시 정계에 나오는 걸 보면 희한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 같다.”

-최근 6·3 지방선거 등에서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정치행보를 보이며 대중 노출이 잦아졌는데. 가까이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지켜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에 대구 서문시장 유세에 입고 나온 속이 비치는 의상을 보고 너무 놀랐다. 박 전 대통령은 상의 길이부터 머리 모양, 옷에 맞는 가방색까지 굉장히 신경을 썼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코디가 안티다. 차라리 안 나오는 게 낫지 않았나. 평생 지켜온 스타일을 이렇게 바꿀 수 있나, 예전엔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나가질 않아 괴로울 정도로 맞춰줘야 했다. 지금은 본인 의사가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다. 그 취향을 바꾼 사람과 의도가 궁금하다. 어떻게 살고 계신지 그 생활에 대한 의심이 들 정도다.”

수사와 재판 그 후, 남은 주장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중형이 선고돼 수감 중이다 최근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일시 석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미 충분히 다퉜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럼에도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삼성 뇌물 관련 묵시적 청탁, 경제공동체 논리는 지금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승계 작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텔레파시로 내 딸에게 말 세 마리를 주라고 했다는 것 아닌가. 귀신도 아니고 어떻게 아나. 게다가 딸에게 줬다손 쳐도 왜 그게 내 뇌물이냐 했더니 경제공동체라서, 박 전 대통령과 내가 돈을 나눠 쓰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격을 떨어뜨리는 얘기다.

삼성은 올림픽을 위해 승마 지원을 준비했는데, 삼성 승마단과 승마협회 차원에서 진행된 로드맵에 내 딸이 포함된 것을 뇌물로 엮었다. 1·2·3심 무죄 판결 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재판 과정에선 검찰 측이 승마 지원 관련 이 회장의 나에 대한 ‘승계를 위한 청탁’을 부당 합병의 근거로 들었다가 인정받지 못했다. 재판부가 청탁 관련 입증 수위를 지적하기도 했다.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향후 재심을 청구할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과정에서의 부당함을 주장해왔는데.

“‘검찰에서 시인하면 직권남용이 되겠지만, 특검에 가면 뇌물죄가 될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한 걸 다 불라고 압박했다. 당시 ‘아는 게 없고, 수사해도 대응할 수 있다’고 했는데 방향을 정해놓고 결국 삼성을 엮어 뇌물죄가 됐다. 재판에서도 밝혔듯 2016년 12월 24일, 특검 사무실에서 당시 검사가 ‘3족을 멸하겠다’ ‘전부 불지 않으면 애들도 평생 끌려다니고, 딸은 길바닥에서 가치 없는 여자로 살 거고, 당신은 감옥에서 죽을 것’이라고 한 게 잊히지 않는다. 모멸감이 컸다.

다른 검사는 A4 용지 5장을 주며 ‘생각나는 것, 반성할 것을 다 쓰라’고 했다. ‘쓸 말이 없다’ 해도 쓰라고 했다. 이경재, 권영광 변호인을 교체하라며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 잘 마무리하자’며 입회를 허가해주지 않기도 했다. 핵심 증거가 된 태블릿PC는 한 번도 제시하거나 보여준 적 없고, 다른 조사를 받다 잠깐 물어본 게 다다. 태블릿을 갖고 있지도 않고, 쓸 줄도 몰랐다. 롯데 등 재벌 기업을 미르·K스포츠재단 산하에 두고 관리하려 했다는 기가 막힌 얘기도 했는데 결국 빠졌다.

조카(장시호씨)가 횡령 혐의로 구속된 뒤엔 검사가 언니(최순득씨) 부부를 데려왔다. 언니와 형부가 같이 무릎 꿇고 ‘어차피 너는 형을 오래 살 테니 조카 혐의를 뒤집어쓰고 가주면, 딸과 손주들을 키워주겠다’며 울었다. 그러다 검사가 오더니 ‘이렇게 부탁을 하는데 그렇게 할까요?’라고 하더라. 장시호는 이후 당시 검사였던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현대고 선배라는 등 플리바게닝에 협조하는 것 같더니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고 다니고 거의 특검 반장이 됐다. 진정한 검사들도 있겠지만, 이런 검사들은 쳐내야 한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사건으로 중형이 선고돼 수감 중이다 최근 건강 문제로 일시 석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 등 측근들의 폭로가 당시 의혹에 불을 붙였다.

“사람을 받아들일 때 사심이 있거나 거짓일 거라는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배신을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특히 고영태가 대통령 의상실을 촬영하고, 언론에 내보낸 건 이해가 안 된다. 완전 보안 구역 아닌가, 근데 법적 책임을 안 묻더라. 딸을 도와준다는 빌미로 박원오가 뒤로 자기 컨설팅 회사에 삼성에서 돈을 받고 있는 줄도 몰랐다. 재판에 나가 보니 다 나를 이용하고 속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인식을 하지 못하고 의심이 없었던 데 자괴감이 들고, 내가 정신을 못 차려서 박 전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가족을 망하게 하고, 국민을 실망에 빠트렸다는 고통에 공황장애도 왔다.”

-안민석 경기교육감이 의원 때 제기한 ‘은닉 재산 수조 원’ ‘스위스 비밀계좌’ ‘페이퍼 컴퍼니’ ‘미국 방산업체 무기계약’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자금’ 등 의혹은 명예훼손 일부 유죄, 손해배상 판결이 났지만 여전히 회자된다.

“그렇게 샅샅이 뒤졌는데 비자금이 있으면 안 나왔겠나. 스위스 은행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 게 있으면 정부가 다 찾을 수 있다. 페이퍼컴퍼니도 그쪽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건데 그걸 할 이유가 없다. 명예훼손 재판에 나가 따졌다. 록히드 마틴 회장을 만났다는데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대라, 어떤 사람이 스위스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서 여행용 가방에 들고 다니나,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자금은 그때 내 나이가 몇인데 관여를 했다는 건가. 상상을 초월한 날조다.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성적 조작 주장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동물과 하는 시합은 조작할 수가 없다.”

-특검 수사의 주축이었던 한동훈 전 검사가 이후 정계에 진출했는데.

“한 의원은 평생을 검사로 보낸 사람이다. 법무부 장관, 여당 대표까지 과연 본인의 정치적 성과를 국민에게 인정받아 간 길인지 모르겠다. 보수 대통령 두 명을 구속하고, 박 전 대통령에게는 30년을 직접 구형한 사람이다. 그때부터 보수가 궤멸되고, 지지자들이 떠났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국회의원으로 나와 보수를 재건한다고 한다. 초선 의원이면 의정활동부터 충실히 해서 평가받고 반성하고, 3선 정도 한 다음에나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본다.”

남겨진 자의 시간, 회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중형이 선고돼 수감 중이다 최근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일시 석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수감 초기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으로 안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살아갈 염치가 없다고 해야 하나. 가족에게도, 박 전 대통령에게도, 국민 앞에도 미안했다. 내가 살 가치가 있나. 중형을 막지도 못할 것이고, 아이들을 보호할 수도 없는데 하는 생각이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구나, 살아도 남은 삶이 좋을 거라는 상상이 안 갔다. 수사 과정에서도 여러 번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어떻게든 들켰다. 죽지 말라는 뜻이었는지 모르겠다.”

-국정농단 관련자가 대부분 풀려났지만 본인은 여전히 수감 중인데.

“박 전 대통령, 이 회장,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다 나왔다.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은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시민사회비서관으로 기용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만 남아 있다. 국정농단의 핵심을 박 전 대통령으로 꼽을 수 없어, 모든 책임을 내게 지운 것 같다. 당초 ‘대한민국 서열 1위’니 하는 비선실세 의혹 시초가 된 ‘정윤회 문건’ 자체도 청와대 관련 인사청탁이 들어와 ‘내가 그런 권한이 어디 있느냐’고 거절한 뒤 나온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끌어내릴 방법이 없으니 저를 이용한 게 아닌가 싶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오찬에서 본인 사면 건의를 듣고 “벌써 그렇게(10년이) 됐느냐”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앞에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여태까지 어디에서도 내 사면 문제를 말해 준 적이 없었다. 내 문제는 다들 얘기하기를 꺼린다. 얻는 이익이 없으니까. 그런 점에서 감사했고,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반응했다는 것 역시 좋게 받아들였다. 나만 남겨두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지 않나. 통합과 화합 측면에서도 그렇다. 정권마다 부르짖었지만 결국 적폐라는 명목을 내세워 국민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왔다. 60대를 감옥에서 보내며 환자가 됐고, 지난 수술 때는 패혈증으로 일주일을 못 깨어났다. 올해 2월 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부터는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중형이 선고돼 11년째 수감 생활을 하다 최근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일시 석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과거로 돌아가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잠시 침묵) 언제로 되돌리고 싶냐 하면, 박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그 대학 시절, 어린 날로 돌아가서 안 만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내 삶은 완전히 180도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일 후회하는 게 그거다. 그 때문에 이런 파장들이 일어났으니 죄스럽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딸과 어린 세 손주가 불쌍하고 안됐다. 죄 없는 애들이 나 때문에 자꾸 죗값을 받는데 조선시대 연좌제도 아니지 않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국정농단에 개입된 것에 무거운 역사적 책임을 느낀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나라가 평온을 찾고 좋은 정치를 하면서 아이들이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국가가 됐으면 하고 바란다. 내게 남은 게 뭐가 있나. 딸하고 손주들인데 생일, 어린이날 한 번을 못 챙겼다. 일주일 한 번, 10분 면회도 손주들이 커가며 교도소가 어떤 곳인지 알면 상처받을 것 같아 못 오게 했다. 만약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손주들과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남들이 하는, 나는 못 해본 일들을 해보고 싶다. ‘외할머니가 어릴 때 이렇게 해줬다’는 추억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이번 생에 그런 기회라도 있다면 좋겠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중형이 선고돼 수감 중이다 최근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 일시 석방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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