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이면 됩니다” 무명감독의 당찬 답변…결국 칸 레드카펫 밟았다

연상호 감독이 2011년 10월 20일 '돼지의 왕' 개봉을 앞두고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상호 감독이 2011년 10월 20일 ‘돼지의 왕’ 개봉을 앞두고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신이 잘 몰랐던 연상호 감독<1>

2016년 4월14일 늦은 오후. 조영각 프로듀서와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는 서울 한 고깃집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연 감독이 한턱내겠다고 두 사람을 불러 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술을 따르며 수다를 떨고 고기를 굽다 오후 6시가 넘어갔다.

연 감독이 갑자기 “아, 이제 시간이 됐네”라고 말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은 후 휴대폰을 들고 뭔가를 검색했다. 그는 휴대폰 액정을 두 사람쪽으로 내밀어 기사를 보여줬다. 연 감독의 영화 ‘부산행’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됐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연 감독은 칸영화제 초청을 이미 통보 받았으나 주변에 함구하다 보도제한시간이 넘어가자 이를 밝힌 것이다.

연 감독은 평소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독립영화계 선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두 사람을 저녁자리에 부른 거였다. 조 프로듀서는 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의 프로듀서로 일했다. 곽 대표는 ‘돼지의 왕’ 제작을 맡았고, 인디스토리는 해외 판매를 담당했다.

‘부산행’은 연 감독의 첫 실사영화였다. 그는 단편으로도 실사를 찍은 적이 없었다. 20대 초반부터 줄곧 애니메이션만 만들어왔다. ‘돼지의 왕’ 이후 ‘사이비’(2013)와 ‘서울역’(2016, ‘부산행’보다 먼저 만들었으나 개봉은 더 늦게 했다) 등 장편 애니메이션만 잇달아 연출했다.

게다가 ‘부산행’은 제작비가 115억 원 가량 들어간 블록버스터였다. 115억 원은 이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비(3억 원 이하)의 40배 가량 되는 거액이었다. 투자배급사 NEW가 제작을 결정하자 연 감독은 덜컥 겁이 났다. 인생 갈림길에서 비상할 수도 있고, 추락할 수도 있었다. 연 감독은 조 프로듀서를 만나 상의했다. 조 프로듀서는 말렸다. “이제 애니메이션쪽에서 자리를 겨우 잡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감독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연 감독은 안주 대신 모험을 택했다.

영화 '부산행'은 201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첫 상영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배우 마동석은 이 영화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세계에 알렸다. NEW 제공

영화 ‘부산행’은 201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첫 상영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배우 마동석은 이 영화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세계에 알렸다. NEW 제공

‘부산행’의 칸영화제 초청은 흥행을 향한 1차 관문이었다. 칸영화제라는 후광을 등에 업으면 개봉 때 관객몰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연 감독이 선배들과 고깃집에서 자축한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칸영화제 효과는 기대보다 더 컸다. ‘부산행’은 2016년 5월13일 심야에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세계 첫 상영됐다.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국내외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다. 열기는 개봉(7월 20일)으로 이어졌다. 흥행 열풍은 한여름 폭염 못지 않았다. ‘부산행’은 극장에서만 1,157만 명이 봤다. 연 감독의 인생 승부수가 보기좋게 성공한 거다.

‘부산행’ 뿐 아니다. 연 감독은 도전의식을 오래전부터 드러냈다. 그는 ‘돼지의 왕’을 준비할 때 당시 독립영화인들은 입밖에 내기 힘들었던 포부를 밝혀 주변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혈기 넘쳤던 25세 애니메이션 키드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돼지의 왕'은 시나리오가 2006년 완성됐으나 2011년에 개봉할 수 있었다. KT&G 상상마당 제공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돼지의 왕’은 시나리오가 2006년 완성됐으나 2011년에 개봉할 수 있었다. KT&G 상상마당 제공

“에너지가 넘쳐났죠. 가까이하기 무서울 정도로요.”

연 감독에 대한 조영각 프로듀서의 첫인상이다. 두 사람은 2003년 12월 처음 만났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였다. 연 감독은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으로 본선경쟁 후보에 올랐다. 조 프로듀서는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다. 연 감독이 조 프로듀서에게 먼저 다가왔다. “제 영화가 상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말을 걸었다. 난처한 질문이었다. 연 감독은 절박해 보였다. ‘지옥’의 수상을 당연하게 여겼다. 조 프로듀서 역시 “상을 받을 만한 영화”로 생각했다. 결과는 달랐다. 원신연 감독(2005년 ‘가발’로 장편영화 연출 데뷔. ‘세븐 데이즈’와 ‘봉오동 전투’ 등 연출)의 중편 ‘빵과 우유’가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했다. 연 감독은 실망이 컸다.

연 감독은 수상에 실패한 후 서울독립영화제 사무실을 수시로 찾았다. 조 프로듀서를 만나 ‘지옥’을 더 상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연 감독은 막 활성화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상영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단편 영화는 영화제 아니면 관객과 만나기 더 어려운 시절이었다. 연 감독은 1년 정도 공들여 만든 ‘지옥’이 몇 군데 영화제에 상영된 후 묻혀버리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연 감독은 차기작 준비를 하면서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조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조 프로듀서에게 연 감독은 조금은 성가신 존재였다. “한 번 보자”고 말로만 하다가 결국 둘은 마주했다. 조 프로듀서는 “감독님 작품 좋고 열심히 하시는데 왜 그리 조바심을 내냐”고 나무라듯 말했다. 연 감독의 반응이 조 프로듀서를 당황하게 했다. “열심히 하는데 아무도 안 봐줘요.”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 KT&G 상상마당 제공

연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 KT&G 상상마당 제공

연 감독은 ‘지옥 파트2’(2004)에 이어 ‘사랑은 단백질’(2008년 다른 단편들과 ‘셀마의 단백질 커피’로 묶여 개봉)을 잇달아 만들던 시기였다. 애니메이션계에서 연 감독의 평판은 올라가고 있었으나 애니메이션 분야 밖으로 나가면 그는 여전히 무명이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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