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살인 수사 도운 할아버지, ICE에 체포
U비자 신청 중이던 피해자 가족 구금…“범죄 신고 위축 우려”
손녀 돌보던 조부, 추방 직전 법원 명령으로 일단 중단
가정폭력 피해자인 딸의 살인 사건 수사에 협조하고, 총상을 입은 생후 2개월 손녀를 돌봐온 할아버지가 이민세관집행국, ICE에 체포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PA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레딩에 거주해 온 에라스모 자발라는 딸 셀레나 자발라가 가정폭력 피해를 입자 경찰 신고를 돕고, 딸을 레딩 경찰서에 데려가 가해자를 신고하도록 했다. 셀레나는 2024년 10월 지역 가정폭력 보호소로 보내졌지만, 약 4개월 뒤 가해자에게 살해됐다. 가해자는 생후 2개월 된 딸에게도 총을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이후 자발라와 그의 아내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손녀를 돌봐왔다. 아기는 지역 외상센터에서 생명을 구한 뒤 필라델피아 세인트 크리스토퍼 아동병원 소아중환자실과 앨런타운 재활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부부는 손녀가 여러 차례 고위험 수술을 받고 영양 튜브와 인공항문 주머니에 의존하던 회복 기간 동안 곁을 지켰다.
자발라 부부는 2025년 2월 U비자를 신청했다. U비자는 범죄 피해자나 증인이 수사기관에 협조할 경우 신청할 수 있는 특별 이민 보호 제도로, 가정폭력, 성폭력, 인신매매, 살인 등 중대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수사를 돕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신청 두 달 뒤 자발라는 출근길에 ICE에 체포됐다.
자발라는 체포 당시 ICE 요원들에게 자신이 U비자 신청 중이며 딸의 살인 사건과 관련해 버크스카운티 지방검찰청 수사에 협조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원 제출 서류에 따르면 ICE 요원들은 “어쩔 수 없다”며 그를 데려갔다. 이후 자발라는 루이지애나에서 멕시코로 추방될 예정이었지만, 판사의 긴급 임시 명령으로 추방은 일단 중단됐다. 현재 그는 펜실베이니아 필립스버그의 모샤논 밸리 처리센터에 수감돼 있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지침이 범죄 피해자와 증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U비자 제도와 충돌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이민 변호사와 인권 단체들은 범죄 피해자나 가족이 수사에 협조해도 구금과 추방 위험에 놓일 경우, 이민자 사회 전체가 범죄 신고를 꺼리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발라를 대리하는 이민 변호사 브리짓 캄브리아는 자발라가 적시에 U비자 신청에 대한 초기 심사를 받았다면 추방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U비자 신청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추방 유예와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캄브리아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아동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이라며, U비자가 보호하려는 중대 범죄 유형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버크스카운티 지방검찰청도 자발라 부부의 U비자 신청을 승인하고, 그의 법적 방어를 돕기 위한 지원 서한을 보냈다. 존 애덤스 지방검사는 자발라의 구금이 범죄 피해자와 목격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ICE가 U비자 신청 중인 사람들을 구금한다면 범죄자를 기소하는 검찰의 능력에 “상당한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자발라 부부는 미국 시민권자인 손녀의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애덤스 검사는 “그와 그의 아내는 이 아이의 양육권을 맡아 돌봐왔고, 제가 아는 한 이 아이에게는 그들이 유일한 가족이었다”며 “ICE의 이번 조치로 이 아이가 할아버지를 잃게 된 사실에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민자 권리 단체들은 2025년 1월 ICE가 기존의 피해자 중심 접근 방식을 폐지한 뒤 이 같은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새 지침에 따르면 ICE는 더 이상 단속 대상자가 범죄 피해자인지, U비자 신청이 계류 중인지 반드시 확인할 의무가 없다. 또한 계류 중인 피해자 기반 이민 신청이 ICE의 집행 또는 추방 결정에서 단독 완화 요인으로 고려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자발라 측은 ICE가 그를 추방 명령이 유효한 사람으로 잘못 판단했으며, 기본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자발라가 과거 자발적 출국 명령을 받은 뒤 실제로 미국을 떠났기 때문에 기존 명령이 이미 집행됐다고 보고 있다. 캄브리아 변호사는 “명령도 없었고, 추방 절차도 없었고, 아무런 절차도 없었다”며 ICE가 그를 “급히 내보내려 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이민 단속과 범죄 피해자 보호 사이의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자 가족이 수사기관을 신뢰하고 협조했음에도 보호받지 못한다면, 이민자 사회에서 범죄 신고와 수사 협조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발라의 구금 문제는 단순한 한 개인의 이민 사건을 넘어,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와 지역사회 공공안전, 그리고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