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타협 무산 뒤 재제청 거부한 대법원장…대법관 공석 끝낼 출구 있나

조소진 기자 외 2명

靑 선호 후보 수용·추천 백지화 이어
마지막 ‘1+1 제청’까지 결국 무산
조희대, “헌법적 근거 없다” 원칙론 강조
양측 버티면 200일 공석 장기화 우려

28일 대법관 재제청과 관련해 청와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임명과 제청을 두고 대법원과 청와대가 ‘출구 없는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대법원의 첫 제청을 청와대가 ‘협의 생략’을 이유로 반려했고, 대법원은 여러 절충안을 두고 장고를 거듭한 끝에 “(재제청 요청은)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전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제 어느 한쪽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와 함께 “200일 넘게 이어진 대법관 공석 기간만 더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백지화도, ‘1+1’도 무산…결국 “헌법적 근거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이흥구 전 대법관에게 서훈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조희대 대법원장. 청와대 제공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 4명을 대상으로 최종 후보자 제청에 고심을 거듭했다. 청와대와 가졌던 통상의 협의 과정이 매끄럽지 않게 이뤄진 탓이다.

처음에는 청와대 측이 선호하는 후보를 일부 수용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하지만 후보 4명을 추린 추천 결과 자체를 백지화하고, 후보추천위원회 구성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안을 곧 검토 대상에 올렸다. 이 때문에 기존 추천자 4명에게 의사를 물었고, 이를 두고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추천 후보자들에게 새 추천 절차를 진행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1+1 제청’도 대안으로 검토됐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이흥구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후보자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후보자를 함께 제청했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각각 선호하는 후보를 한 명씩 제청해 장기간 멈춰선 인선 절차를 다시 움직이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방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의 임명 절차는 진행하면서 손 후보자에 대해서는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인 서면 제청”이라며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대법원에 새로운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스스로 퇴로 막았다” 법원 내부도 우려

조 대법원장은 결국 헌법상 제청권이라는 원칙을 선택했다. 조 대법원장은 22일 청와대에 “재제청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공식 회신했다. 청와대가 보낸 문서에 재제청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사유가 제시되지 않았고, 헌법과 법률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후보자를 둘러싼 인선 협의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범위를 따지는 헌법 해석의 문제로 넘어간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인선 갈등을 제청권과 임명권을 둘러싼 법리 문제로 가져간 것을 두고 엇갈린 평가를 내린다. 한 부장판사는 “조 대법원장 스스로 퇴로를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제 어느 한쪽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대법원도 여러 방안을 검토했지만, 청와대가 요구하는 특정 후보자를 제청할 수는 없었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결국 청와대와 대법원이 다시 협의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초유의 ‘재제청’…인선 재개 절차 불분명

28일 대법관 재제청과 관련해 청와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기자의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문제는 법적 공백이다.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청와대가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채 재제청을 요구하고, 대법원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인선 절차는 멈춰선 상태다. 현행법상 이런 교착을 해소할 후속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양측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거부의 구체적인 판단 과정은 추후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제청 관련 답변도 결론만 드려서 궁금하신 게 많다고 들었다”며 “그런 내용을 앞으로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또 필요한 게 있으면 공보관을 통해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다음 달 6일 열리는 대법원 국정감사 일반증인으로 채택됐다.

200일 넘은 대법관 공석…상고심 부담도 계속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조희대 대법원장이 포함된 국정감사 증인 참고인 명단이 야당 법사위원 자리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인선이 지연되면서 대법관 공석도 어느덧 200일을 넘어섰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3일 퇴임한 뒤 후임 자리는 지금까지 비어 있다. 당장 29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 기일을 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무상 여론조사 제공’ 등 혐의 상고심 사건을 심리해야 한다. 김성수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한때 두 자리였던 공석은 한 자리로 줄었지만, 대법관 1명이 빠진 상태에서 상고심 사건을 당분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소부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만큼 공석 장기화는 사건 배당과 재판부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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