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조부터 윤단비까지… 여성 감독들의 빛나는 활약
김연주 기자
‘경주기행’ ‘비광’ 극장가 출격
윤단비 감독 ‘첫세계’ 토론토 영화제 초청
여성 감독 계보 잇는 활약

영화 ‘경주기행’에 이어 ‘비광’까지 다채로운 색채를 자랑하는 여성 감독들의 작품이 잇따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콘텐츠지오 제공
다채로운 장르와 소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사례도 늘면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침체기를 지나 회복세에 접어든 극장가에 여성 감독들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김미조 감독의 신작 ‘경주기행’이 평단의 호평 속 관객과 만나고 있다.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복수에 나선 네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데뷔작 ‘갈매기'(2021)로 주목받은 김미조 감독의 신작으로 일반적인 복수극의 틀에서 벗어나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과 감정을 입체적으로 풀어내며 관객들을 울고 웃게 만들고 있다.
정식 개봉 전부터 해외 영화제의 초청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경주기행’은 제45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관객상 수상에 이어 북미 최대 장르 영화제인 제30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와 제6회 바르셀로나한국영화제에 초청됐다. 피렌체 한국영화제 측은 “복수 영화의 틀을 깨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날카로운 유머로 풀어냈다”며 김미조 감독의 각본과 연출력을 높이 평가했다. 김미조 감독의 강점은 인물과 감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데 있다. 사회를 향한 예리한 시선과 인간의 감정,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자신만의 색채를 구축해왔다.
영화 ‘미쓰백'(2018), 드라마 ‘클라이맥스'(2026)로 호평받은 이지원 감독은 9월 한국 영화 개봉 러시의 첫 주자로 나섰다. ‘미쓰백’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비광’이다. 작품은 톱스타 부부 중구와 남미가 갑자기 나타난 딸 동주로 인해 파경을 맞은 뒤, 8년 후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 동주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윤단비 감독의 신작 ‘첫세계’가 토론토국제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기염을 토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이지원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상처받은 이들의 연대를 다룬다. 앞서 이 감독은 ‘미쓰백’에서는 여성들의 연대와 구원을 이야기했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추락을 조명했다. ‘비광’은 두 전작의 연장선에서 위기의 순간 서로를 지켜내려는 가족의 연대와 희생을 그린다. 세상에서 소외되거나 버림받은 이들이 서로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직관적인 연출로 풀어냈다.
‘남매의 여름밤’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은 윤단비 감독의 신작 ‘첫세계’는 해외 영화제에 이어 부산을 찾는다. ‘첫세계’는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이어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육로로 연결되지 않은 섬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떠나본 적 없는 열일곱 살 진 앞에 할머니의 장례를 위해 오랜만에 섬으로 돌아온 두재가 나타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성장의 순간과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감정의 결을 세세하게 포착한다.
‘화차’의 변영주 감독,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69세’의 임선애 감독 등으로 이어져 온 한국 여성 감독의 계보에 새로운 이름들이 더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윤가은 감독도 주목할 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윤가은 감독은 지난해 ‘세계의 주인’을 통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고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밖에도 윤 감독은 올해 제19회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영화계에서의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여성 감독들의 등장은 영화산업 전반에서도 반가운 변화다. 다양한 시선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장르의 문법을 비틀고,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인물과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내며 영화의 폭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해외 영화제 초청과 평단의 호평이 흥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확보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성 감독들의 활약은 성별을 넘어 한국 영화가 얼마나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일시적인 흐름에 그치지 않고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넓히는 지속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김연주 기자yeonju.kim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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