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시대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시선들 [세상을 움직일 미래 코드]
홍기빈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초빙부연구위원
<1>일론 머스크 현상
편집자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 국가미래전략연구위원회와 한국일보가 함께 마련한 기획입니다. 우리 삶을 뒤흔드는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습니다. 놀라운 미래 대전환을 독해하고 전망하며 대응하고자 합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이제 한 사람의 기업가라는 범주로 다 설명되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에 홀로 캐나다로 건너간 이민자였다.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이틀 만에 자퇴하고 곧바로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고, 지도 서비스 기업 집투(Zip2)와 온라인 결제 서비스 페이팔(PayPal)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초기 자산을 축적했다. 이후 그는 전기차 기업 테슬라, 우주 발사체 기업 스페이스X,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뉴럴링크, 터널 굴착 기업 보링컴퍼니, 인공지능 기업 xAI, 그리고 소셜미디어 플랫폼 X(옛 트위터)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산업을 넘나드는 복합 제국을 구축했다.
산업의 지도를 바꾼 혁신가
2026년 6월 스페이스X가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단행하고 회사 가치가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서면서, 스페이스X 지분 약 42%를 보유한 그의 순자산도 한때 1조 달러를 넘어섰다. 포브스와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는 그를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이른바 ‘조만장자(trillionaire)’로 집계했으며, 이후 주가 등락에 따라 자산 규모가 오르내리면서도 그는 세계 1위 부호 자리를 수년째 굳건히 지키고 있다. 로켓, 자동차, 인공지능, 뇌과학, 여론 플랫폼 등 하나같이 미래의 사회 구조를 암시하는 하이테크 사업체들을 한 사람이 동시에 통제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토머스 에디슨을 훌쩍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머스크의 미래 영웅으로서의 찬란한 모습은 분명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쇄적 도전으로 여러 산업의 판을 새로 짰으며, 파산이 임박했다는 비관적 예측을 비웃듯이 화려하게 살아나는 드라마를 몇 번이나 보여주었다. 발사체를 회수해 재사용한다는 발상은 한때 업계의 조롱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우주 발사 비용을 극적으로 낮추어 민간 우주개발 시대를 열었다. 전기차가 별난 취미의 영역에서 자동차 산업의 주류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도 테슬라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스타링크 위성망은 지구 곳곳의 오지와 재난 지역, 분쟁 지역에까지 인터넷을 공급하며 통신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놓았고, 자율주행과 인공일반지능(AGI), 화성 이주라는 다음 세대의 담론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겨 놓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몸소 실행하면서 상징하는 미래 사회의 아이콘으로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정부의 국가 사업과 함께 큰 ‘국가 대리인’
그러나 그의 화려한 성취 이면에는 국가와의 긴밀한 결탁이 도사리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시장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스페이스X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국방부로부터 받은 수십조 원 규모의 계약을 발판 삼아 성장했으며, 유인 우주선 발사와 위성 임무 상당수를 사실상 독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테슬라 역시 초기에 몇 번의 위기를 맞았지만 미국 에너지부의 정부 대출과 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 등으로 이를 넘긴 바 있다.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군 통신망 운용에 깊숙이 관여하며 사실상 준(準)공공 인프라의 지위를 획득했다. 본래 국가가 책임져야 할 우주, 국방통신, 에너지 전환이라는 영역을 민간 기업이 국가의 자금과 규제 특혜를 등에 업고 대행해 온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시장에서 홀로 승리한 기업가라기보다, 국가와 자본이 결합해 만들어낸 ‘국가 대리인(state agent)’에 훨씬 가깝다.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의 실질적 수장을 맡아 연방 인력 구조조정과 예산 삭감을 직접 주도한 사건은 머스크와 국가 기구의 유착이 노골화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적도 없는 억만장자가 자신의 사업과 이해관계가 얽힌 연방 부처의 살림살이를 직접 손질하는 장면은 그가 민주주의의 통상적 견제와 균형의 경로를 얼마나 훌쩍 넘어선 인물인지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음영을 모두 머금고 있는 머스크라는 인물은 이제 열렬한 개인 숭배로 이어지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우주 발사체, 전기차 인프라, 위성 통신망, 인공지능 그리고 여론 플랫폼을 한 개인이 동시에 통제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권력 집중이다. 특히 X라는 거대한 여론 플랫폼을 직접 소유하여 수억 명의 팔로워에게 실시간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던질 수 있는 인물로서, 그가 남긴 트윗 한 줄은 걸핏하면 분기별 실적 발표보다 시장과 여론을 크게 휘집어 놓았고, 그의 정치적 발언과 개입은 미국 국내 선거는 물론 여러 나라의 여론 지형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를 열렬히 추종하는 이들에게 머스크는 더 이상 냉정한 평가와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거의 종교적 신뢰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진위와 무관하게 그대로 신념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마저 나타난다. 이는 기술 엘리트 한 사람이 산업 등 일개 분야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담론과 정치 지형까지 좌우하는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 영향력의 방향 또한 이동해 왔다. 머스크는 오랫동안 친환경 에너지와 기본소득 등을 내세우며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말부터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대한 반발, 캘리포니아의 규제와 세금 정책에 대한 불만, 그리고 이른바 ‘워크'(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이 누적되면서 점차 진보 진영과 거리를 두었다.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한 뒤에는 콘텐츠 심의팀과 팩트체크팀 인력을 대거 해고하고 극우 음모론과 반이민 정서에 우호적인 게시물을 자신의 계정으로 직접 퍼뜨리기 시작했으며, 그해 중간선거부터는 정치 후원금도 대부분 공화당으로 향했다.
2024년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최대 후원자로 나서 3,000억 원 가까운 자금을 쏟아붓고 유세 현장까지 동행했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의 정치적 견해는 국제적으로 극우 성향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2024년 이후 트럼프 정부와 긴밀히 유착하면서 (극)우파적 국가 자본주의의 경향까지 보이고 있는 미국 ‘빅테크’의 흐름을 대표한다고 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 현상’의 명암
머스크가 한국 사회에서는 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 분명하다. 외모와 언어가 한국인들과 동일하다고 해도, 아무 연고 없는 열일곱 살 이민자가 한국 사회에서 혼자 힘으로 자라나 최대 규모의 기업들을 연이어 만들어내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게 되려면 △능력만 있다면 출신과 국적과 배경에 무관하게 정상까지 아니 그 위까지 올라가는 일이 가능한 사회, △성공 확률이 낮은 파격적인 아이디어에도 기꺼이 거액이 흘러들어 올 수 있는 자본시장과 투자 문화와 벤처 생태계가 작동하는 사회, △무엇보다도 상식을 파괴하는 나아가 누가 보아도 미친 잠꼬대라고 말할 만한 생각을 구상하고 힘차게 밀어 부칠 수 있는 개성적인 인물들이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꼭 머스크와 같은 괴위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가 크고 작은 혁신 기업가들을 내올 수 있는 사회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머스크의 사례는 신자유주의 시절을 풍미했던 믿음, ‘시장의 역동성만이 혁신의 열쇠’라는 생각이 얼마나 빗나간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거대한 제국이 국가의 전폭적 지원 없이는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마리아나 마주카토 같은 이가 말하는 ‘기업가적 국가’, 즉 국가가 혁신의 주체이자 핵심 요소라는 생각이 훨씬 더 현실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가 우주, 이차전지,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전략 산업을 키워내려면 정부가 초기 위험을 함께 분담하는 대담한 투자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교훈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결탁이 소수 기업이나 개인에게 과도한 권력을 몰아주지 않도록 견제하는 장치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라는 존재는 여러 면에서 21세기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인지를 암시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도 이러한 인물들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반더빌트는 철도 독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고, 록펠러는 석유 시장의 지배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였고, 에디슨은 획기적인 기술과 발명으로 새 세상을 열었고, 포드는 자동차라는 신문물을 대중적 생활 용품으로 만들어냈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는 이 거물들을 모두 합쳐놓은 모습으로 떠올랐고, 이들 모두를 능가하는 부와 권력의 제국을 건설하였고, 이제 그 힘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끌고 미래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열광하는 이들도, 증오하는 이들도, 심지어 그를 잘 모르는 이들도 모두 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을 수는 없다. 일론 머스크 숭배에 빠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를 어릿광대라고 무시하는 일은 더욱 위험하다. 일론 머스크가 곧 미래는 아닐 수 있지만, 일론 머스크를 비껴갈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