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싸웠다고 전부 이스라엘과 한배 타라? 트럼프의 황당한 구상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외 1명
아랍국들에 “아브라함 협정 동참을”
전쟁 계기로 되레 걸프국들 간 반목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사저인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동을 마친 뒤 함께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네타냐후 총리와 마주 보며 그를 지목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국가들에 자국과 이란 간 전쟁이 끝나면 전부 이스라엘과 한배에 타라고 요구했다. 언젠가 이란도 동승할지 모른다면서다. 중동 역사와 정세를 무시한 비현실적 구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제 평화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글에서 “지금까지 중동 각국이 보여 준 지지와 협력에 감사하고 싶다”며 “그것은 그들이 역사적인 아브라함 협정에 동참함으로써 더 향상되고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알겠나. 어쩌면 이란도 동참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부터 구체화해 오고 있는 중동 평화 구상으로, 이스라엘과 아랍·무슬림 국가 간 관계 정상화가 목표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 4개국이 1기 때 가입했는데, 2기 들어서도 확대를 추진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수교를 협정의 정점으로 보고 있다. 협정이 커질수록 반미(反美) 국가인 시아파 맹주 이란은 고립된다. 이를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이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이날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복수의 미 정부 관리를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사우디, UAE, 카타르, 파키스탄, 튀르키예, 이집트, 요르단, 바레인 정상들과 전화 회의를 열어 이란과의 종전 합의안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 자리에서 그가 이들을 상대로 자국이 대(對)이란 전쟁을 끝내면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끝나고 중동 정세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나라다. 특히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인 사우디, UAE, 카타르, 바레인은 이란의 보복 공격에 노출되며 전쟁의 직접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마저 각기 사정이 다르다. UAE는 GCC 회원국 중 이란에 가장 강경하다.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이런 행보는 특히 사우디·카타르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가자지구 전쟁 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둘러싼 대립으로 트럼프 대통령 바람과 달리 이스라엘과 오히려 더 멀어졌다.
“실현 불가”
액시오스에 따르면 전날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요청에 이스라엘과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우디, 카타르, 파키스탄의 정상들은 깜짝 놀랐다. 한 미국 관리는 액시오스에 “전화선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농담조로 ‘아직 거기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이란까지 협정에 집어넣겠다는 계획은 황당한 발상에 가깝다. 액시오스는 “현재 이란 정권은 이스라엘의 파멸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미국 연방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은 구상을 지지했다. 이날 엑스(X·옛 트위터) 글에서 “사우디, 카타르, 파키스탄이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는 것은 역내와 전 세계에 상상을 초월하는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이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향후 양국 관계에 심각한 후과가 초래되고 이 평화 제안도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압박했다. 액시오스는 “단기간에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극도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 워싱턴=권경성 특파원ficcione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