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등 필즈상 수상자 25명 “수학 난제 푸는 AI, 학계에 해 끼쳐”
이현주 기자
공동 서한 통해 AI에 의한 난제 해결 비판
“아이디어 싹틀 수 있는 비옥한 토양 파괴”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2022년 7월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에서 2022 필즈상 수상 기념 강연 및 해설 강연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들이 인공지능(AI) 기업들이 AI를 통해 수학 난제 해결에 나서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학자들이 난제를 푸는 과정에서 통찰과 아이디어를 얻고, 수학 공동체 내에서도 다양한 지적 활동과 교류가 발생할 기회를 AI가 차단한다는 취지다.
11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테런스 타오 미국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등 필즈상 수상자 25명은 이날 ‘수학 분야에서의 AI의 심각한 정렬 실패(A Severe Misalignment of AI in Mathematics)’라는 제목의 공동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지난 몇 달 동안 대형 언어 모델(LLM)의 수학적 능력은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주요 미해결 난제들을 풀 수 있을 정도로 극적으로 향상됐다”며 “수학 문제를 풀려는 AI 기업들의 강행은 수학이라는 학문과 수학계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픈AI가 자사 인공지능(AI)이 유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증명해 유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시각화했다고 발표한 그림. 각기 다른 선의 색깔은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유체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오픈AI 홈페이지
이 같은 서한은 오픈AI가 지난 8일 ‘세계 7대 수학 난제’로 꼽히며 90년간 풀리지 않던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문제’를 인공지능(AI)으로 증명했다고 밝힌 뒤 나왔다. 오픈AI는 새 AI모델과 수천 개의 AI 에이전트를 투입해 88시간 만에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문제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이 방정식은 물이나 공기를 연속적으로 이어진 물질로 보고, 각 부분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를 계산하는 수학식이다. 비행기 날개 주변의 공기 흐름을 분석하거나 날씨를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필즈상 수상자들은 이에 대해 “AI 기업의 목표와 수학계의 목표는 심각하게 어긋나(misaligned) 있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유명한 수학 문제들은 종종 우리가 수학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이정표이자 등대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 가운데 하나를 해결한다는 것은 새로운 통찰과 흥미로운 방법이 등장했다는 확실한 신호”라고 덧붙였다. 문제가 풀리고 난 뒤에도, 수학 공동체는 장기간 발표와 토론 등의 과정을 거쳐 아이디어를 다듬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학자들과 학생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장기간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는 토양도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AI를 통한 난제 해결은 이 같은 지적 공동체의 상호작용과 학술 활동을 방해한다는 게 필즈상 수상자들의 결론이다. 이들은 “AI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참 또는 거짓’이라는 판정을 대량 생산하게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기는커녕 그러한 아이디어가 싹틀 수 있는 비옥한 토양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학자들 사이에서 지식과 아이디어가 전달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인간의 전승 사슬’ 역시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필즈상 수상자들은 이 같은 문제가 수학계에 국한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들은 “수학계와 AI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은 물론, 향후 다양한 지적 노동 분야에서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시급히 공론화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2019년 올해의 법조언론인상이현주 기자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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