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텔, 우익 항의에 안중근 기념비 철거… 제막 1주일 만

도쿄=류호 특파원

일본서 네 번째 세워진 안중근 기념석비
제막식 일주일 만에 사과하며 철거 결정
우익들 “테러리스트 찬양하냐” 항의

안중근의사숭모회를 비롯한 한일 인사들이 6일 일본 고치현 고난시 소재 구로시오호텔 부지에 건립된 ‘한일우호 동양평화’ 석비 제막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 고치현 소재의 한 호텔이 부지에 세운 안중근 의사 기념석비 철거를 결정했다. 우익 세력의 거센 항의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호텔의 철거 결정으로 일본에서 네 번째로 세워진 안 의사 기념석비는 건립한 지 불과 7일 만에 사라지게 됐다.

11일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고치현 고난시에 있는 구로시오호텔은 전날 홈페이지에 ‘기념비 설치에 관한 사과와 보고’라는 제목의 공지 글을 올렸다. 호텔은 “이번에 호텔 부지 내에 설치된 기념비와 관련해 많은 분께 심려와 불편을 끼쳐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석비 철거는 10~12일에 이뤄진다고 공지했다.

호텔은 설치 전 석비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석비 전면에는 안 의사가 추구한 가치인 ‘한일우호 동양평화’를 일본식으로 표현한 ‘일한(한일)우호 동양평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호텔은 “일한 우호를 상징하는 기념비라는 취지에 응해 부지 사용을 승낙했지만, 비문 내용을 파악한 건 6일 제막식 당일이었다”며 “확인 부족과 기념비가 가지는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대한 검토가 불충분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구로시오호텔이 10일 홈페이지에 호텔 부지 내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석비 철거와 함께 사과문을 올렸다. 구로시오호텔 홈페이지 캡처

석비는 고치현 일한친선협회 명예회장인 니시모리 시오조 전 고치현의회 의장의 요청으로 세워졌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2025년)을 기념해 건립하겠다며 호텔 부지 일부를 빌려달라고 요청했고, 호텔 측은 한일 우호 증진 취지에 공감한다며 화답했다. 이달 6일 열린 기념석비 제막식에는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한일 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이번 석비 건립이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과 인류 공영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미래 세대에게 한일 간 화해와 협력의 중요성을 전하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약 일주일 만에 분위기가 바뀐 건 우익 세력의 거센 항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익 세력은 안 의사를 일본의 초대 총리이자 대한제국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테러리스트라고 폄훼한다. 산케이는 “이번 기념비 설치를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테러리스트 안중근의 기념비를 세우나’ ‘테러리스트를 찬양하는 것이냐’ 등 비난이 잇따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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