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대 앞엔 한 손 없는 골키퍼… 팔·다리 잃고도 뛰는 가자 선수들 [인터뷰]

북중미 월드컵 지켜본 팔레스타인 선수들
“우리도 언젠가” 국제 무대 도전 꿈 키워
경기장·필수 장비 열악한 여건 속 지원 부족
11월 절단 장애인 월드컵 출전도 무산돼
“팔레스타인 국기 들어 올릴 때까지 뛸 것”

가자지구 알다라즈 구역에 거주하는 로잔 카이라가 최근 창단한 팔레스타인 여성 축구단에서 훈련하고 있다. PAFA 제공

목발을 지지대 삼아 경기장 위를 빠르게 달린다. 한쪽 다리에 온 힘을 싣는다. 발끝을 떠난 축구공이 곡선을 그리며 그물망으로 빨려 들어간다. ‘골’이다. 두 다리로도 하기 어려운 동작을 한 다리로 해낸다. 골대 앞을 지키는 골키퍼는 한쪽 손이 없다. ‘팔레스타인 절단 장애인 축구협회(PAFA)’가 보내온 영상 속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축구선수들은 신체 장애에도 불구하고 “삶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전쟁에 팔·다리 잃어…비극 속 회복

전 세계인의 축제인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는 와중에도 가자지구에는 공습이 멈추지 않았다. 주민들은 전기가 겨우 들어오는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나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지켜봤다. 이들이 응원했던 국가인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20일과 21일 가자지구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축구선수들을 메신저 음성 인터뷰로 만났다. 선수들은 “두 다리로 뛰는 선수들과 한 다리로 뛰는 우리의 조건은 다르지만, 축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똑같다”며 “월드컵을 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팔레스타인 절단 장애인 축구단 선수들은 팔에 고정시킨 목발을 지지해 한쪽 다리로 패스를 하거나 공을 뺏는다. PAFA 제공

축구단은 전쟁 중 군사 공격이나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선수들로 구성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절단 장애인은 약 5,000명으로, 5명 중 1명은 어린이다.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로잔 카이라(24)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초기인 2023년 11월 집 앞에 떨어진 포탄으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로잔의 아버지 역시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해야 했고, 남동생도 골반 골절상을 입었다. 대부분의 병원이 문을 닫아 회복하는 과정은 더뎠다. 그는 “제때 치료받지 못해 염증이 악화됐고, 결국 다리를 추가로 절단하는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떠올렸다.

2018년 팔레스타인 절단 장애인 축구단 ‘알자지라 클럽’에 입단한 사에드 무함마드 알마스리. 그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PAFA 제공

절망 속에서 손을 내민 건 축구였다. 처음엔 목발을 사용해 균형을 잡으며 동시에 공을 제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그러나 반복된 연습 끝에 첫 골을 넣었다. 동료들과는 가족이 됐고, 경기장은 삶의 에너지를 되찾는 공간이 됐다. 로잔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경기장 밖의 모든 고통과 현실을 잠시 끊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8년 전 축구단에 입단한 사에드 알마스리(40)도 “같은 고통을 겪은 선수들과 모여 공을 차는 것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도 지원은 부족

2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가자시티=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선수들이 훈련을 이어가는 길은 험난하다. 가자지구 내 경기장은 대부분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피란민들을 위한 임시 수용 시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매주 훈련을 위해 파괴된 도로를 따라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데이르알발라의 잔디 구장까지 수십㎞ 거리를 오간다. 이스라엘의 엄격한 물품 반입 통제로 공, 신발, 보호대 등 필수 용품은 물론이고 스포츠 전용 목발이나 첨단 의족 같은 장비는 아예 구할 수조차 없다. 사에드는 “지금 사용하는 목발은 축구 전용이 아니어서 공을 세게 차기만 해도 금세 부러져 버린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절단 장애인 축구협회 설립자인 푸아드 갈리운 회장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가자지구의 축구 인프라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국제적 지원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논의되는 가자지구 평화위원회에도 스포츠 인프라 재건을 담당하는 부서가 배정돼 있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절단 장애인 유소년을 위해 아카데미 운영을 확대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

가자지구에 사는 절단 장애인 청소년들이 목발을 짚고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PAFA 제공

그럼에도 선수들은 꿈을 안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로잔은 “우리는 뉴스에 나오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며 동정을 바라는 피해자도 아니다. 모든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그는 “전쟁이 경기장과 집을 파괴하고 우리의 신체를 앗아갔지만, 내면의 힘과 의지까지는 파괴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사에드 역시 “국제 무대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어올리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푸아드 갈리운 팔레스타인 절단장애인 축구협회 회장과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

11월 멕시코에서는 세계절단장애인축구연맹(WAFF) 주관의 월드컵이 열리지만, 팔레스타인 선수들은 전쟁과 봉쇄로 지역 예선조차 참가하지 못했다. 푸아드 회장은 “파괴와 비극을 겪은 가자지구의 특성을 고려해 국제 대회 참가 보장 등 국제 기구의 전방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비록 이번 월드컵 출전은 무산됐지만, 한 다리로 희망을 차올리는 이들의 도전은 가자지구 한복판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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