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녹음되지 않나요?” 김건희 징역 4년 결정지은 한 마디는

조소진 기자 외 2명

[김건희 여사 항소심 4년 선고]
같은 녹취록 두고 1심은 ‘의심’ 2심은 ‘공동정범’
“녹음되지 않나요” “블록딜” 통화 해석 엇갈려
“건희도 피해자” 주포 대화… 2심 “시점 고려해야”

편집자주

초유의 ‘3대 특검’이 규명한 사실이 법정으로 향했다. 조은석·민중기·이명현 특별검사팀이 밝힌 진상은 이제 재판정에서 증거와 공방으로 검증된다.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을 위한 여정을 차분히 기록한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8월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 수수’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던 김건희 여사가 28일 2심에서는 징역 4년을 받았다. 대폭 늘어난 형량인데, 여기엔 주가조작 혐의 판단이 무죄에서 유죄로 바뀐 게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근거엔 김 여사가 주식 거래 과정에서 남긴 녹취록이 있었다.

서울고법 형사15-2부(부장 신종오 성언주 원익선)는 28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여사에 대해 주가조작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블랙펄인베스트먼트 관계자 등과 순차적으로 공모해 시세조종에 가담한 공동정범’이라고 지적했다. 일부를 면소, 무죄로 판단한 1심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국일보가 29일 김 여사 등의 ‘미래에셋증권 녹취록’ 196건을 분석한 결과, 1·2심 판단을 가른 핵심은 같은 통화 내용에 대한 해석 차이였다. 1심은 녹취록들을 ‘의심이 가는’ 증거 정도로 본 반면 2심은 김 여사가 시세조종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가담한 ‘증거’라고 본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여사는 2009년 4월부터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주식 거래를 해왔다. 김 여사는 미래에셋증권 역삼동지점장 박모씨에게 수시로 전화해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수익률을 확인했고, 박씨로부터 유망 종목을 추천받았다.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통화 내용 등을 근거로 김 여사가 주식 거래 경험이 있는 투자자라고 봤다. 이에 더해 도이치모터스 주식 관련 통화 녹음, 실제 거래 경위, 블랙펄 측에 수익 40%를 지급하기로 한 계좌 제공 방식 등을 종합, 김 여사가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이뤄진 시세조종을 인식하고도 가담한 ‘공동정범’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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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종범 기자

김건희 “다 녹음되지 않나요?”

2010년 10월 22일 김건희-미래에셋 박모씨

김건희: 아니, 왜냐면 앞으로 통화를 할 거면 이게 핸드폰으로 하는 게 낫잖아요. 그래서
박모씨: 네 네 괜찮습니다.
김건희: 다 녹음되지 않나?
박모씨: 뭐 괜찮습니다. 녹음, 예, 그 회사 전화는 녹음이 되지요.
김건희: 아 그니까요.

(중략)

김건희: 그럼 바로 그냥 사이버 계좌로 할 수 있는거죠?
박모씨: 그쵸. 사이버 계좌 이미 그때 만들어놓으셨고. 그 바로 그 프로그램 다운받아서 바로 그 사이버로 매매할 수 있어요.
김건희: 그 공인인증서는 어떻게 발급받는 거죠?
박모씨: 어, 컴퓨터 앞에서요.
김건희: 네.

2010년 10월 22일 김 여사와 미래에셋증권 역삼동지점장 박모씨 사이 통화가 대표적 예다. 김 여사는 당시 박씨에게 “앞으로 통화를 할 거면 핸드폰으로 하는 게 낫지 않느냐” “다 녹음되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재판부는 1심과 다르게 통화가 이뤄진 시점에 주목했다. 주포 김모씨 등이 2차 시세조종을 시작한 다음 날로, 김 여사는 이날 미래에셋증권 계좌에 10억 원을 입금했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이날 홈트레이딩시스템(HTS) 거래 방법을 문의하면서 통화 녹음 여부까지 언급한 점에 대해 “앞으로 해당 계좌로 이뤄질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관해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 여사가 단순히 계좌를 맡긴 것이 아니라, 거래 방식과 그 흔적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 여사 측은 같은 녹취록의 다른 부분을 근거로 정반대 주장을 폈다. 김 여사는 당시 박씨에게 “공인인증서는 어떻게 발급받는 거냐”고 물었고, 박씨는 “컴퓨터 앞에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 측은 김 여사가 공인인증서 발급 방법도 모를 정도로 주식 거래와 전자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투자자였고, 통화 녹음도 단순 질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블록딜 빨리 옮겨야”… 1심은 ‘도구로 이용’, 2심은 ‘이익 배분 다툼’

2011년 1월 10일 김건희-미래에셋 박모씨

김건희: 제가 오늘 그 뭐죠? 제가 옮기다가 오늘 뭐 블록으로 좀 팔고 다시 그리로 옮길 거예요.
박모씨: 아아 블록으로 판다고요?
김건희: 네, 블록으로 이거 지금 너무 물량이 많으니까. 바로 팔았다가 바로 다시 옮길 거니까요.
박모씨: 네, 네.
김건희: 지금 이걸 11시 50분까지 해야 된대요.

2011년 1월 통화 녹취록에 대한 판단도 갈렸다. 김 여사는 2011년 1월 10일 오전 박씨에게 “블록으로 이거 지금 너무 물량이 많으니까, 바로 팔았다가 다시 옮길 거니까요. 지금 이걸 11시 50분까지 해야 된대요” “제가 그 계좌를 잠깐 빨리 옮겨야 될 것 같아가지고”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1월 11일 오전 통화에서 박씨는 “궁금해서요. 혹시 얼마로 블록했어요?” “그러니까 만약에 블록을 하게 되면 종가 대비 한 10% DC해서 파는 모양이군요?”라고 김 여사에게 물었고, 김 여사는 “그런가 봐요. 제가 오늘 그거 끝나고 전화 한번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2010년 1월 13일 김건희-미래에셋 박모씨

김건희: 이거 보여 줘야 되나? 난 잘 몰라 가지고.
박모씨: 왜요?
김건희: 이거 하는데..어? 12%씩이나 떼네? 이거 무슨 블록딜 할 때 하는 거를?
박모씨: 12%라는 게 뭐예요? 수익금을 12%를 뗀다는 거예요? 아니면 총 금액의 12%를 뗀다는 거예요?

(중략)
박모씨: 25억7,700. 여기서 또 셰어를 하는, 나누는 거예요?
김건희: 거기서 내가, 거기는 내가 40%주기로 했어요. 일단.
박모씨: 어유, 많이도 낸다.
김건희: 6대 4로 나누기로 하면 저쪽에다 얼마 주는 거예요?
박모씨: 어유, 그러면….

김 여사 측은 1월 13일 통화에서 김 여사가 “이거 보여 줘야 되나? 난 잘 몰라가지고. 어? 12%씩 떼네? 이거 무슨 블록딜 할 때 하는 거를?”이라고 물어본 점을 토대로, 김 여사가 블록딜 등 주식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었다기보단, 증권사 직원의 설명에 의존한 일반 투자자였다는 주장을 폈다. 박씨가 이 통화에서 “이야 이건 너무했다. 그럼 걔네들은 다 뭐 남의 돈 갖고선. 걔네들이 다 먹어버리네”라고 말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1심은 블랙펄 측이 김 여사의 의사와 관계없이 과도한 수수료를 뗀 점을 들어 김 여사를 ‘도구로 이용된 전주’로 봤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공범들 간의 이익 배분 다툼’으로 해석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연스러운 주가 상승을 기대했다면 40%나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돈이 블랙펄 측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주가 상승에 대한 보상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권오수가 건희 엄마 필요해서”… 2심 “공범 책임 줄이려 나온 말”

2020년 2월 20일 주포 김모씨, 이모씨 녹취록

김모씨: 걔는 그거지, 왜냐면은 아는 게 없지. 지는, 지 사업만 아는 거고, 지 사업도 지가 잘해서 하나, 엄마가 뒤에서 다 치맛바람 불러주니까 한 거지.
이모씨: 그러니까, 어, 그 뭐 지 자기 하는 거니까 그거 있어서 권오수가 어떻게 해라, 뭐 이런 거지. 이렇게 될지 몰랐었던 거지 솔직히 권오수도.
김모씨: 그니까 권오수는 그때 당시에는 건희 엄마가 필요하니까, 건희한테 잘해주는 척하면서, 돈 먹여줄 것처럼 뭐 이래 가지고 한 거지.
이모씨: 사실 그것도 형, 운이 좋아서 돈을 먹은 거지. 맞잖아. 누군가가 역할을 했으니까 먹은 거 아냐. 까놓고 얘기해서 우리가, 권오수가 사실, 어 정확하게 썼더구만. 9천 원 상당, 만 원 했다가 1년 만에 완전히. 압박 엄청 당했어. 진짜 그때 투자자들 다 눈탱이 친 거잖아 솔직히.

2020년 2월 주포들 간 통화 녹음에 대해서도 1·2심 해석이 갈렸다. 이들은 김 여사를 두고 “권오수가 주식 사라고 해서 산 건데. 그냥 여기서 솔직히 김건희 이런 사람 피해자잖아” “one of them” “권오수는 그때 당시에는 건희 엄마가 필요하니까, 건희한테 잘해주는 척하면서, 돈 먹여줄 것처럼 뭐 이래가지고 한 거지”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나눴다. 1심은 대화 맥락을 고려할 때, 김 여사가 시세조종 세력 내부자가 아니라 ‘외부인’에 가까웠다고 봤다. 시세조종 세력도 김 여사를 범행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2심은 해당 대화의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세조종 의혹이 언론 보도와 고발 등으로 드러난 뒤, 주포들이 권 전 회장을 비난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줄이려는 상황에서 나온 말인 만큼, 이를 그대로 김 여사의 무관여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자신들의 시세조종 범행이 드러나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나온 대화”라며 “그 통화 내용만으로 김 여사의 관여 정도를 가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 여사 측은 선고 직후 상고 의지를 밝혔다. 변호인단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는 직접증거는 없는데, 일부 정황만으로 공동정범을 인정한 것은 문제”라며 “단순 전주를 공동정범으로 인정한 사례는 없는 만큼, 상고심에서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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