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정체성 지키려 한국식 이름 사용”
넷플릭스 드라마 ‘비프’ 이성진 감독 겸 작가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됩니다. 다양성이 폭넓게 인정되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달라진 거죠.”
넷플릭스 드라마 ‘비프’(Beef·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 겸 작가가 한국시간 16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2023 컨퍼런스에서 “‘비프’는 5~10년 전이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비프’는 올해 4월 공개 후 넷플릭스 시청 시간 10위 안에 5주 연속 이름을 올리며 흥행했다. 주인공 대니(스티븐 연)를 비롯해 동생 폴(영 마지노), 친척 아이작(데이빗 최) 등 여러 한인 배우들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대니가 한인 교회에 다니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려지고 한인 인물들 사이에는 한국어 대사를 쓰는 등 한인 이민자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이 감독은 “대니라는 인물이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먼저 생각하고 그대로 반영했는데, 그 안에 제 삶의 많은 부분이 반영됐다”며 “나도 한인 교회를 다니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때의 모습을 드라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콘텐츠 업계에서 활동하는 여러 한인 인사들이 영어 이름을 쓰는 것과 달리 이 감독은 자신의 영어 이름 ‘써니’가 아닌 한국 이름을 미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한다.
이 감독은 “미국에서 보낸 학창 시절에 출석을 부를 때 (선생님이)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때면 부끄러웠고, 그래서 영어 이름을 쓰기 시작해 작가 일을 시작한 뒤에도 상당 기간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중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이 개봉했고 박찬욱 감독님의 이름도 유명해졌다”며 “미국인들이 ‘봉준호’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나도 ‘써니’라는 미국 이름 말고 이성진이란 이름에 자부심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부심을 갖고 일하면 내 한국 이름 발음을 들어도 사람들이 웃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성진 감독은 ‘비프’로 주목을 받은 후 할리웃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마블스튜디오는 신작 ‘썬더볼트’의 각본을 그에게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