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성 자재로 공사하다 참사… 홍콩 화재 키운 ‘안전불감증’

300명 이상 실종·사망 ‘대형 참사’
‘건축 기준 위반’ 자재 사용 의심에
홍콩 경찰, 건설사 임원 등 3명 체포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7일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7일 소방관들이 진화 작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홍콩의 한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300명 넘는 사람이 사망 또는 실종된 가운데 리모델링 공사 업체의 안전불감증이 화재 확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가연성 재질의 건설 자재와 대나무 비계(공사용 임시 가설 발판)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불길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홍콩 경찰은 건축업체 관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해 조사에 나섰다.

최소 75명 사망… 실종자 270명 이상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7일 소방당국이 고가 사다리를 이용해 고층부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7일 소방당국이 고가 사다리를 이용해 고층부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26일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발생한 화재로 27일 오후까지 최소 75명이 숨졌다. 부상자도 76명에 달한다. 앞서 홍콩 소방당국은 279명이 실종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아파트 8개 동 중 7개 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27시간 만에 모두 진화됐다.

홍콩 경찰의 초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물 외벽에 설치된 공사 시설을 따라 불길이 급속히 번진 것으로 나타났다. 웡 푹 코트는 지난해 7월부터 주민들이 거주하는 상태로 대규모 외벽 보수 공사를 진행해 왔는데, 당국은 시공업체가 내연성이 높은 안전망과 방수포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기고 불에 잘 타는 재질의 저가 제품으로 공사 보조 시설을 설치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공사 업체가 유리창 파손과 거주자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창문에 덧댄 ‘발포 보드’가 빠르게 타면서 화재를 확산시켰다. 크리스 탕 홍콩 보안국장은 브리핑에서 “피해 건물 외벽에 설치된 일부 자재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불에 탔다”며 시공사의 건축 기준 위반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27일 오전 건설 업체 이사 2명과 안전 컨설턴트 1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하고 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상태다.

대나무 재질의 비계도 불길이 커진 원인으로 꼽힌다. 그간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공사현장에서 가볍고 설치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전통방식으로 제작한 대나무 비계를 널리 사용해 왔다. 다만 추락 사고 등 안전상의 이유로 홍콩 정부는 지난 3월부터 대나무 비계를 단계적 퇴출 대상으로 지정했다.

화재원인은 ‘담배꽁초’?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7일 구급대원들이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시민을 구급차에 싣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7일 구급대원들이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시민을 구급차에 싣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건물 내 주민들의 대피도 수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웡 푹 코트는 1983년 홍콩 정부의 주거대책의 일환으로 지어진 건물로 총 8개 동에 1,984세대가 밀집 거주하고 있다. 거주민 4,600명 가운데 40%가량은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화재가 중층부에서 확산되며 고층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대피에 곤란을 겪었다.

방재시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SCMP에 따르면 화재 당시 경보 장치가 울리지 않은 탓에 경비원이 일일이 문을 두드려 주민들을 피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보수 공사 기간 인부들이 화재 대피로를 이용해 건물에 출입한 탓에 일부 화재 경보기가 꺼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화재 발생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비계에서의 흡연이 화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SCMP는 입주자 인터뷰를 통해 건설 기간 동안 노동자들이 비계에서 흡연하는 일이 잦았다고 보도했다. 건물 입주자 키코 마(33)는 BBC에 “공사 기간 중 창틀에서 담배꽁초를 찾는 일이 잦았다”며 “사람들이 계속 화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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