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폭발한 유럽… 프랑스서 이탈리아·포르투갈까지 시위 확산
신혜정 기자
프랑스 55만여명 시위 참여… 방화·약탈로 격화
이탈리아·벨기에·포르투갈 시민도 거리로
주거난·교육비 불만에 각국 정부 압박

프랑스 전역에 물가상승과 사회복지시스템 붕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17일 파리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에 세워진 차량이 불타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학생들이 교육 환경 개선을 외치며 시작한 시위가 물가 상승과 복지 시스템 붕괴에 항의하는 전국적 시위로 확대됐다. 주말 프랑스 주요 도시에선 시위대의 방화·약탈까지 벌어졌다. 시위는 주변국으로도 번져, 유럽 곳곳이 고물가와 부실 교육 등에 항의하는 목소리로 뒤덮이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와 마르세유·리옹·툴루즈 등 주요 도시에서 노동자와 학생, 시민이 일제히 행진을 벌였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전국 110곳에서 크고 작은 행진이 있었고 55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참여 단체인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자체 추산으로 전국에서 1,750건의 집회 및 시위가 열렸고 80만 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시위는 당초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일부 지역에서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일부 시위대가 등장하면서 폭력 사태로 번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노란조끼 시위를 부활시키라’는 구호가 퍼지면서 강경 시위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노란조끼 시위란 2018년 유류세 인상 반대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형광 노란색 안전조끼를 입고 나온 시위대가 수개월간 방화·점거 등 강경 시위를 이어갔다.
이날 프랑스의 남서부 소도시 리모주에서는 시위대가 시청에 불을 질러 건물 대부분이 불탔다. 제3 도시 리옹에서는 시위대가 던진 폭죽에 관광 안내소가 불탔다. 수도 파리에서도 중심가의 라파예트 백화점 및 주요 명품 매장 등을 습격했고,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경찰 약 150명이 다치고 시위대 1,200명이 체포됐다.
전날 시민들에게 평화 시위를 촉구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 현장 곳곳이 물리적 충돌로 얼룩지자 “프랑스에서 폭력은 설 자리가 없다”며 공공기물 파손과 약탈 행위를 엄격히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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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경찰이 17일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인 피아자(광장에 모인 이탈리아)’ 시위 참가자들을 제압하고 있다. 밀라노=AP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도 이날 로마와 밀라노·토리노·볼로냐 등 주요 도시에서 고물가와 저임금, 부실한 공공 서비스 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전날 주요 도시에서 프랑스 학생 시위에 영감을 받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온 데 이어 더 큰 규모의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벨기에에서도 이달 초 수도 브뤼셀과 동부 도시 리에주를 중심으로 고교생 시위가 시작돼, 이날 수백 명이 참여한 고물가 및 교육비 상승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과 제2 도시 포르투에서도 이날 고물가 및 주거비 부담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려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왔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일부 참가자들은 ‘스페인처럼 하자’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87세 노인의 강제퇴거로 시작된 스페인 주택난 시위가 영향을 준 것이다.
생활고와 열악한 교육환경 등을 비판하며 시작된 시위는 유럽 각국 정부에 정치적 위험이 되고 있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주택난 항의 시위로 정부 입지가 좁아지자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선언했다. 약 6개월 뒤 대선을 앞둔 프랑스 정부는 시위대의 폭력을 비판하는 극우 세력과 과도한 경찰 대응을 비판하는 좌파 정당의 공세 속에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시위대가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름을 딴 ‘노 멜로니 데이’라는 이름으로 시위를 벌이며 교육 재정을 줄이고 군비를 늘린 멜로니 정부 정책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 제388회, 381회, 376회 이달의 기자상신혜정 기자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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