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폭행에 이은 여성 성추행…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고음악계 거장

한정호 에투알클래식 대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존 엘리엇 가디너. 그는 고음악계의 권위자로 평가받지만 폭행 사건에 이어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면서 클래식 음악계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인터무지카

‘고음악계의 거장’으로 추앙받아온 83세의 영국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6월 16일 독일 라이프치히 바흐 페스티벌 공연 직후, 축제 관계자인 여성 직원이 기념품을 가디너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체 접촉이 문제가 됐다. 해당 여성은 가디너의 신체 접촉이 자신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며 형사 고소를 제기했다. 앞서 가디너는 2023년 프랑스 베를리오즈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공연 중 무대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퇴장했다는 이유로 백스테이지에서 베이스바리톤 윌리엄 토머스의 얼굴을 폭행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성악가 폭행에 이어 성추행 논란 휩싸인 고음악계 거장

당시 바흐 페스티벌 현장에 있던 독일 음악 저널리스트 클라우스 피셔에 따르면 축제 측은 공연을 마친 출연진에게 기념품으로 ‘나무 씨앗 증서(Baum-Zertifikate)’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는 가디너가 증서를 담은 두루마리를 여성 직원의 티셔츠 목선 안으로 여러 차례 밀어넣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가디너가 두루마리 안의 씨앗을 꺼내 직원의 옷깃 부근에 꽂으려 하고, 양손으로 옷깃을 몇 초간 만지는 장면도 담겼다. 피해자는 당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며칠 뒤 경찰에 형사 고소장을 제출했다.

가디너는 “공연 직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상대가 두루마리를 양 손에 잔뜩 쥐고 있어서 두루마리를 목 근처에 끼워주려 했을 뿐이며 성적인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씨앗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본인 소유의) 영국 도싯의 숲에 기꺼이 심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2023년 폭행 사건 당시에는 폭염과 고령에 따른 감정 조절 문제가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주변에서 거론됐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행동이 오해를 부른 것이라고 가디너가 직접 설명했다.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 2023년 발생한 성악가 폭행 사건 이후 국내 클래식 음악 커뮤니티에서는 그를 ‘펀치왕’이라 부르며 조롱하기도 했다. 인터무지카

독일 언론이 주목한 것은 의도보다는 행동 자체다. 공영방송 MDR은 사건 경위와 수사 진행 상황, 피해자 보호 조치를 연이어 보도했고, SWR은 이를 “굴욕적인 가부장적 행태”라고 규정했다. 술집에서 손님이 종업원의 옷에 팁을 꽂는 행위를 연상시키며, 여성을 남성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대상으로 취급한 점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독일 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가디너의 행위가 법적 처벌 대상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지휘자가 왜 공연장에서 여성 직원의 몸에 손을 대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는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가 핵심이다. 현장에 있었던 저널리스트 클라우스 피셔 역시 가디너의 해명을 “어이없는 변명”이라고 일축했다. “나무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은 사건의 본질을 비껴간다는 것이다. 상대의 신체를 자신의 판단대로 다뤄도 된다고 여긴 태도 자체를 문제로 보았다.

10여 년 동안 이어진 클래식 음악계 미투 운동의 연장선

이번 사건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지난 10여 년 동안 이어온 미투 운동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지휘자 제임스 러바인 사건을 거치며 클래식 음악계는 예술적 업적이 권력 남용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이번 사건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랜 권력을 가진 사람이 타인과의 경계를 얼마나 무심코 넘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전설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그는 함께 오페라 무대에 섰던 가수와 무용수들을 성희롱했다는 혐의로 2019년 고발당했고, 결국 로스앤젤레스 오페라 총감독직에서 물러났다. AFP 연합뉴스

일본 음악평론가 사와야 나츠키는 “가디너는 상대를 동등한 협업자가 아닌, 자신의 행동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행동 역시 의도적인 권위 과시라기보다, 오랜 권위 속에서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압박으로 작용하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가디너는 라이프치히 바흐 페스티벌에 여러 차례 초청됐고, 축제는 2022년부터 꽃다발 대신 ‘나무 증서’를 출연진에게 전달해 왔다. 그 역시 같은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음에도 이번에는 “무엇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은 오히려 주최 측의 상징적인 감사 표시조차 그동안 얼마나 무심하게 받아들여 왔는지를 드러냈다는 역풍을 낳았다. 상대의 옷 안에 물건을 넣으려는 행동은 애초에 대등한 관계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 역시 권위에 익숙해진 태도가 낳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3년 폭행 사건 이후 가디너는 자신의 행동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인정했다. 정신건강 전문가의 상담과 인지 행동 치료를 시작했고, 60년 가까이 이끌었던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를 떠났다. 새로 창단한 스프링헤드 컨스텔레이션을 소개하면서는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인터뷰에서는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 사건 이후 독일 음악계가 던지는 질문은 “정말 달라졌는가”다. 사과의 진정성은 행동으로 증명된다. 이번 행동이 의도적이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신체적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고도 그 결과를 담담하게 타인의 오해로 설명하는 태도다.

라이프치히 바흐 페스티벌을 주최한 바흐 아카이브는 피해자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고, 가디너의 2027년 축제 초청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라이프치히 시와 함께 공연장 행동 강령과 안전 지침도 마련하기로 했다. 독일 본 베토벤 페스티벌 예술감독 스티븐 월터는 “반복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저지르고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권력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디너 개인을 향한 비판인 동시에 오늘날 유럽 문화예술계가 공유하는 기준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공적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 고음악계에서 반복되는 권력형 비위와 성희롱 논란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유럽 고음악계에서는 권력형 비위와 성희롱 논란이 반복되는 것일까. 고음악(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HIP)이라는 장르 자체가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 자리 잡은 조직 구조와 권력의 집중이다.

프랑스의 유명 지휘자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 그는 2024년 여러 연주자들로부터 성희롱 혐의로 고소당했다. 자비에 로트 홈페이지

현대의 대형 오케스트라는 이사회와 행정 조직, 공공기관, 후원자 등 여러 주체가 운영을 함께 맡는다. 예술감독의 권한이 크더라도 이를 견제할 장치가 비교적 잘 마련돼 있다. 반면 유럽의 대표적인 고음악 단체들은 특정 지휘자가 직접 창단해 수십 년 동안 이끌어 온 경우가 대다수다. 가디너의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의 레 시에클도 마찬가지다. 단체의 역사와 명성, 음악적 정체성이 창립자와 동일시되면서 지휘자 개인이 곧 단체의 브랜드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내부 견제가 근본적으로 쉽지 않다. 창립자의 판단은 곧 단체의 방향이 되고, 그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조직 자체를 흔드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오랫동안 쌓인 명성과 예술적 성취는 자연스럽게 비판의 문턱을 높인다.

여기에 고음악 연주자 대부분이 프리랜서라는 현실도 영향을 미친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같은 연주자가 같은 지휘자와 여러 프로젝트를 오가는 경우가 많다. 음악감독의 평가는 다음 계약과 국제 무대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영국 의회도 음악산업 조사보고서에서 프리랜서 중심의 고용 구조와 심각한 권력 불균형이 성희롱 신고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용 안정성이 낮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러한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유럽 문화예술계에는 ‘예술적 천재’를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는 문화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뛰어난 예술가라면 까다로운 성격이나 독재적인 리더십, 폭언과 성적 일탈까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런 구습은 이제 제도적으로도 도전을 받고 있다. 2025년 프랑스 의회 조사보고서는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을 포함한 문화예술계의 성폭력과 성희롱 문제를 “구조적(endemic)이고, 체계적(systemic)이며, 지속적(persistent)”이라고 규정했다.

‘예술적 천재’ 개인에게 집중되는 조직 구조와 권력이 문제

고음악계 특유의 교육 환경도 문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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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호 에투알클래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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