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한반도 냉전 끝내고 국제 평화 기여”… ‘엔드(END) 이니셔티브’ 제시

취임 후 유엔총회 데뷔… 3단계 비핵화론 강조
트럼프 의식한 듯 “북미대화 노력 적극 지지”
비상계엄 극복 언급하며 “세계 시민 등불 될 것”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엔드(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북한과의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를 통해 궁극적으로 비핵화(Denuclearization)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정상급 인사를 대상으로 한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엔드 이니셔티브로 한반도의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회원국 정상 중 7번째 연설자로 나섰다.

이 대통령은 “올해는 유엔 창설 80주년이자, 한반도 분단 80주년”이라며 “민주 대한민국은 평화공존, 공동 성장의 한반도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겠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 첫걸음은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의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광복절 축사에서의 ‘대북 3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며 취임 후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 중단 배경과 연결 지어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즉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핵화, 냉철한 인식 필요”

이 대통령은 비핵화와 관련해선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 없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축소-폐기’에 이르는 비핵화 3단계 해법을 부각했다. 지난달 21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밝힌 ‘핵 동결-축소-비핵화’라는 3단계 비핵화론을 재차 꺼낸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자칫 북핵을 용인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이 남북 대화를 거부한 채 핵 능력 강화 노선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제재 강화를 통한 긴장 고조 대신 관계 개선을 통해 평화를 지키고 비핵화 기회를 찾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우리에게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뉴시스

트럼프 염두 “북미대화 노력 지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남북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기를 바란다”고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의식한 듯 “남북 관계 발전을 추구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배제’를 조건부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서로 다른 나라의 국민이 상호 협력하며 전 지구적인 도전을 함께 헤쳐나가는 미래가 꿈같은 장밋빛 전망처럼 들릴 수도 있다”면서도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평화를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K컬처’의 전 세계적 인기를 근거로 들었다. “K컬처의 성공과 확산은 모든 배경의 차이를 넘어 인류 보편의 공감이 가능함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엄 극복 언급하며 “세계 시민 등불 될 것”

한편 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극복을 두고 “친위 쿠데타로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대한국민의 강렬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며 “대한민국이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민주주의의 저력은 대한민국의 것인 동시에, 전 세계의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의 미래를 논의할 유엔총회에서 세계 시민의 등불이 될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당당히 선언한다”고도 했다.

이 밖에 국제 사회를 향해 △인공지능(AI) 대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혁신과 번영의 토대를 만들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는 에너지 대전환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뉴욕=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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