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라” 트럼프처럼? 오바마 전 대통령, 민주당에 충고
토크쇼 출연해 유권자와 소통 강조
진행자에 “대통령 되면 더 잘할 것”

바락 오바마(왼쪽) 전 미국 대통령과 조란 맘다니 미 뉴욕시장이 지난달 18일 뉴욕 브롱크스의 한 유치원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소속된 당이자 야당인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말을 쉽게 하라”고 충고했다. 거칠지만 쉬운 말로 대중에 영합하며 지지층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유식한 척하지 마
오바마 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방송된 미국 CBS방송 심야 토크쇼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쇼’ 인터뷰에서 민주당원들을 상대로 유권자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강화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민주당의 문제점으로 자주 지적되는 당내 균열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내가 민주당원들에게 더 관심 있는 것은 대학 세미나에 들어간 것처럼 굴지 않고 일반인들과 (위화감 없이) 대화할 줄 아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쉬운 영어(plain English)로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범으로 거론된 인물이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맘다니 시장을 효과적인 소통가로 묘사하며, 공문서에나 쓰일 만한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표현(gobbledygook)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그의 장점으로 꼽았다. “비범한 재능이 있다”고 그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염두에 뒀을 법한 또 한 명의 인물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장황하게 중언부언하기로 유명하지만, 그의 말이 어려워 유권자들이 알아듣지 못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반면 민주당 정치인들은 학계에서나 배타적으로 통용되는 전문 용어들을 대중을 상대로 구사하다 메시지 전달에 실패하고 도리어 잘난 척하는 이로 찍히기 일쑤다.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정적에게도 배워야 한다는 게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이었을 수 있다.
법무부 도구화 금물
그러나 이날 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조롱과 질책의 대상이었다. 거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코미디언 출신 진행자 콜베어가 농담조로 자신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거론하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웃음을 참는 체하며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식으로 화답했다. 그는 “(대통령의) 기준이 바뀌었다”며 “당신은 지금까지 우리가 봐 온 몇몇 이들보다 훨씬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근히 트럼프 대통령을 깔보며 비웃은 것이다.
정색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이 가져서는 안 되는 권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법무부가 백악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정적을 겨냥하는 도구로 활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백악관이 법무장관에게 대통령이 기소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기소하라고 지시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며 “법무장관은 국민의 변호사이지 대통령의 고문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더불어 “군대의 정치화는 금물”이라고 짚는가 하면 “여러 가지 부업”도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도시에 주(州)방위군을 투입해 논란을 빚어 왔고, 정부가 감독하는 업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가나 측근이 자주 이득을 얻는다는 사실도 도마에 오른 상태다.
백악관은 발끈했다. 대변인실의 데이비스 잉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스티븐 콜베어 같은 한심한 사고뭉치들이나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들 중 하나를 인터뷰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 워싱턴=권경성 특파원ficciones@hankookilbo.com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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