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빠진 종전안에 뿔난 트럼프… 방중 앞두고 이란에 재폭격 으름장

“사망 직전 휴전… 생존 확률 1%”
핵잠 위치 공개·추가 제재로 압박
유가 상승 골치… 과세 유예 추진
시진핑에 ‘양보 설득’ 요구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만찬 도중 누군가를 지목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란을 상대로 다시 폭격당할 각오를 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포기 의사가 담기지 않은 이란의 종전안을 보고 화가 나서다. 하지만 가뜩이나 치솟은 유가를 더 끌어올릴 전쟁 재개는 결행하기가 쉽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이란이 양보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우라늄 넘기겠다더니” 역정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이란과의 휴전이 거대한 연명 장치에 의존 중인데, 생존 가능성이 1%로 의사가 선고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휴전을 사망 직전 환자에 빗댄 것이다. 이란과의 휴전 합의를 깨기로 거의 마음을 굳혔다는 위협과 다름없다. 그는 백악관 행사 참석자들에게 발언을 길게 하지 말라며 “많은 장군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도 했다. 농담조였지만 군사 작전 재개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한 셈이다.

아예 빈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행동 재개를 포함한 이란 전쟁 대응 방안을 논의하려고 이날 국가안보팀과의 회의를 잡아 뒀다고 보도했다. 미국 CNN방송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잇따라 결렬된 데 대해 인내심을 잃고 최근 몇주 사이 어느 때보다 대규모 전투 재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압박이 우선이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담당하는 미 해군 제6함대는 오하이오급 탄도미사일 잠수함이 10일 스페인 남부 해안의 영국령 지브롤터에 당도했다고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미국 군사전문지 성조지는 알래스카호를 해당 잠수함으로 지목하며 “핵탄두 장착 가능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이라고 소개했다. 통상 극비로 취급되는 핵 미사일 탑재 잠수함 위치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對)이란 경고라는 해석이 나온다.

협상 진전을 이유로 착수 하루 만에 중단했던 호르무즈해협 억류 선박 구출 작전인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 재개도 검토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폭스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이번에는 호르무즈해협 통과 선박을 호위하는 수준을 넘어 그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사 압박이 전부가 아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이란산 원유의 대중국 수출을 지원한 개인 3명과 기업 9곳을 추가로 제재했다. 재무부는 앞서 8일에도 이란의 무기·무인기(드론) 생산 지원에 간여한 중국·홍콩의 기업·개인들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CNN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정권 내 강경파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금융 메커니즘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할 정보에 최대 1,500만 달러(약 220억 원)의 포상금을 걸었다고도 이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초강수를 두려는 것은 이란의 협상안에 실망해서다. 이날 백악관 취재진 앞에서 그는 ‘쓰레기’ ‘멍청한 제안’ 같은 노골적인 표현까지 써 가며 이란이 미국에 전달한 종전안을 폄하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20년간 핵 농축 프로그램 중단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해외 이전 △나탄즈·포르도·이스파한 소재 핵시설 3곳 해체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핵심 요구다.

그러나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까지 포함한 모든 전선의 전쟁 종식이 선행돼야 하며, 30일간 신뢰가 쌓인 뒤에야 핵 프로그램 관련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전까지만 해도 고농축 우라늄을 미국이나 중국에 넘기겠다고 했던 이란이 말을 바꿨다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액시오스는 “미국은 이란의 회신을 열흘이나 기다렸고 백악관은 이란의 입장이 진전됐을 것으로 낙관했다”고 전했다.

“시간 끌수록 美납세자 큰 대가”

지난달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의 한 주유소 주유기에 가격 표시판을 가리키며 “내가 했다”고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형상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휘발유 가격 급등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한테 물으려는 게 부착 의도다. 애슈빌=AFP 연합뉴스

이란은 물러설 기색이 아니다. 이란의 종전 협상단을 이끌었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이날 엑스(X)를 통해 “우리 군은 어떤 침략에도 단호히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는 모든 선택지에 대한 준비를 마쳤고 그들은 (우리 대응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시간을 끌수록 미국 납세자들이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진퇴양난의 처지다. 전쟁에 따른 고유가는 이미 미국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이날 CNN에 따르면 미국 브라운대 연구진은 2월 말 미국·이란 전쟁 시작 뒤 미 소비자들이 부담한 휘발유·경유 추가 비용이 370억 달러(약 55조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가구당 평균은 284달러(약 42만 원)다. 개전 전 갤런(3.8리터)당 2.98달러였던 미국 휘발유 가격은 이날 4.52달러를 기록했다.

협상 교착으로 호르무즈해협 경색 상태가 지속되면 유가 하락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략 비축유 방출이나 선박 운송 제한 및 연료 관련 환경 규제 완화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CBS방송에 “일정 기간 연방 휘발유세를 없앴다가 유가가 떨어지면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류세 부과가 중단돼도 가격 하락 폭은 미미할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던 방중(중국 시간 13~15일) 전 종전 협상 타결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다만 대이란 군사 행동 명령이 설령 현실화하더라도 방중 이후일 것이라고 복수의 미국 관리가 액시오스에 말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최대 원유 구매국이자 군사 장비 판매국인 중국의 지위를 활용해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압력을 넣으리라는 게 미국 당국자 예상이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결과에 대이란 협상 진전 여부가 달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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