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 1개로 무적함대 막았다… 카보베르데의 기적

H조 1차전서 스페인과 0-0 무승부
스페인 파상공세에 ‘육탄방어’ 대응
불혹의 수문장 보지냐 ‘뜨거운 눈물’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경기. 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난 후, 카보베르데의 골키퍼 보지냐가 국기를 흔들고 있다. 애틀랜타=AFP·연합뉴스

인구 52만의 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 스페인과 득점 없이 비겼다. 월드컵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힐 만한 이변이자, 현대 축구에서 약팀이 강팀에 맞서는 또 다른 해법을 보여준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카보베르데는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H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페인에 0-0으로 비기며 승점 1을 따냈다. 경기 전만 해도 관심은 스페인이 몇 골 차 승리를 거둘지, ‘신성’ 라민 야말(19·바르셀로나)이 월드컵 데뷔전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90분 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스페인이 아닌 카보베르데였다.

이날 경기의 핵심은 수비 방식이었다. 카보베르데는 흔히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 선택하는 거친 압박축구나 조직적인 반칙 전술 대신, 철저한 위치 선정과 공간 통제에 집중했다. 실제로 카보베르데가 이 경기에서 기록한 파울은 단 1개였다.

월드컵 무대에서 한 경기 파울 1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는 1966년 이후 60년 만에 나온 최저 파울 기록이다. 카보베르데는 스페인에 공을 내주고도 무리하게 달려들지 않았고, 위험 지역에서 불필요한 몸싸움도 최소화했다. 대신 촘촘한 수비 간격을 유지하며 무적함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했다. ‘강팀을 상대로 반칙이 불가피하다’는 통념을 뒤집은 것이다.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경기에서 스페인의 마르크 쿠쿠레야(왼쪽)와 카보베르데의 라이안 멘데스가 치열한 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애틀랜타=AP·연합뉴스

물론 수치만 놓고 보면, 경기는 스페인의 일방적인 공세였다. FIFA 집계에 따르면, 스페인은 슈팅 수에서 27-6, 유효 슈팅은 7-1, 크로스 시도에서는 무려 40-4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점수판이 끝내 움직이지 않은 데에는 베테랑 골키퍼, 보지냐(40·샤베스)의 활약이 빛났다. 2012년 A매치 데뷔 이후 88경기에 출전한 그는 이날도 국가대표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90분을 보냈다. 보지냐는 스페인의 결정적인 슈팅을 연달아 막아냈는데, 특히 전반 40분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스페인의 마르크 쿠쿠레야(28·첼시)가 머리로 떨궈준 공을 페란 토레스(26·스페인)가 골문 정면에서 강하게 찼지만,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튀어나왔다. 이 공을 미켈 오야르사발(29·레알 소시에다드)이 감각적인 헤더로 재차 골문을 노렸는데, 이 공이 보지냐의 손끝에 걸렸다.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골키퍼 보지냐(왼쪽)가 상대의 공을 선방하고 있다. 애틀랜타=AFP·연합뉴스

후반 들어 스페인은 아끼던 라민 야말(19·바르셀로나)을 투입하며 카보베르데의 골문을 공략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카보베르데 수비진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보지냐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골문을 지켜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우승이라도 차지한 듯 서로를 얼싸안았다. 역사상 첫 월드컵 무대에서 소중한 승점 1을 따냈기 때문이다. 가장 감격한 사람은 역시 보지냐였다. 그는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모든 선수단과 카보베르데 국민이 무척 자랑스럽고 행복한 심정일 것”이라며 “어머니가 현장에 오시지 못해 아쉬워하셨지만, 이 영광을 카보베르데의 모든 국민에게 바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열린 H조 경기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루과이가 1-1로 비기면서 조 4개 팀 모두 승점 1로 출발했다. 현재 카보베르데는 골 득실과 FIFA 랭킹에 밀려 조 최하위지만, 조별리그 판도는 사실상 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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