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수사” 권고도 묵살… 홍명보 선임 의혹, 9개월 방치한 경찰
권정현 기자
수사심의위, “사건 신속 처리” 지시 의결
종로서, 권고에도 9개월간 처분 안 내려
월드컵 부진 비판 거세지자 서울청 이첩

홍명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2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 치바스 바예 베르데 훈련장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서 열린 월드컵 결산 기자회견에서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스1
홍명보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부당 개입 의혹을 수사해 온 경찰이 내부 통제기구로부터 ‘신속히 수사하라’는 권고를 받고도 9개월 넘게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월드컵 부진 이후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이 커지자 뒤늦게 사건을 서울경찰청으로 넘기면서 ‘뒷북 수사’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지난해 9월 23일 이임생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의 업무방해 혐의 고발 사건과 관련해 종로경찰서에 신속한 사건 처리를 지시하도록 의결했다.
사건은 2024년 7월 한 시민이 이 전 이사를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홍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 정관과 국가대표팀 운영 규정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경찰이 장기간 결론을 내리지 않자 고발인은 ‘수사심의’를 신청했다.
수사심의는 변호사와 법학자 등 외부 전문가가 수사 과정과 결과의 공정·적법성을 심의하는 경찰 내부 통제 절차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도입된 제도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심의 결과를 따르지 않기는 어렵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 모습. 뉴스1
당시 수사심의위는 “사건 관계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신속 수사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고발인의 신청을 받아들였고, 서울청에 종로서의 신속한 사건 처리를 지시하도록 통보했다. 하지만 종로서는 이후 약 9개월 동안 이렇다 할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경찰은 결국 이달 1일 “사안의 중요도를 감안했다”며 사건을 서울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로 이첩했다. 월드컵 성적 부진 이후 여론 압박이 커지고,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한 결과”라고 공개 비판한 뒤에야 수사팀을 교체한 것이다.
수사가 지연되는 사이 같은 쟁점을 둘러싼 행정소송에서 법원 판단이 먼저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4월 대한축구협회가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 1심에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국가대표 감독 추천 과정에 권한 없이 개입했다고 본 문체부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행정소송 등에 따라 수사가 지연됐다”며 “필요한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 판단이 이미 나온 데다 정 회장과 홍 전 감독이 모두 사의를 표하면서,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 권정현 기자hhhy@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