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인플레 사랑해”… 전쟁발 고물가에 무신경

워싱턴=권경성 특파원

“종전 땐 반락” 강조하려다 실언
선거 의식한 고의 폄하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미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이민 단속 예산 법안(미국 안보법·Secure America Act) 서명 행사 도중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사랑합니다(I love the inflatio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다가 한 말이다.

이날은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날이었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전인 2월 2.4%였던 CPI 연간 상승률은 3월 들어 3.3%로 폭등했고 4월(3.8%)에 이어 5월(4.2%)까지 석 달 연속 급등세다. 5월에는 2023년 4월(4.9%)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핵심 요인은 중동 전쟁이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며 걸프(페르시아만) 국가들의 원유를 시장이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자 국제 유가가 치솟았고, 미국 기름값도 가파르게 올랐다. 유가 상승은 운송비에 영향을 미쳐 식료품 등 다른 제품들의 가격까지 끌어올렸다. 그 결과 개전 2개월 만에 CPI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3.6%)을 앞지르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CPI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왔고,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아니다.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수치가 훌륭했다”며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 나는 인플레이션을 사랑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며칠 전 밤 불빛 없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갇혔던) 22척의 선박을 빼냈다”고 자랑한 뒤, 이 덕에 “지금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가 아니라 85~90달러 수준”이고 “전쟁이 끝나면 (가격이)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미국 경제 덕에 전쟁 여파가 당초 우려보다 크지 않다는 인식을 드러내 왔다. 백악관 부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이날 성명에서 “예상대로 나온 5월 CPI 보고서는 이란의 훼방으로 인한 일시적 에너지 공급 위기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미국 국민을 위해 꾸준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갑부 대통령의 치적 욕심

지난달 11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식료품점에서 한 남성이 생선을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하지만 실언은 실언이었다. 비난 여론이 일자 곧장 자신에게 우호적인 매체인 미 뉴욕포스트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쟁이 끝나면 좋아질 인플레이션 수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며 “수치가 많이 낮아지리라는 게 내가 말하려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신의 발언이 맥락과 상관없이 보도되기 일쑤라고 불평도 했다.

고물가는 본인 임기 후반 의회 지형을 결정할 11월 중간선거에 큰 악재다. 이를 의식해 일부러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폄하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그는 7일 방영된 미국 NBC방송 인터뷰에서 행정부가 경제를 잘 다루고 있다며 자국 통화 정책 기관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금리 인하를 촉구했다. 자신이 임명한 케빈 워시 의장의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주재(16, 17일)에 임박해서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 압력 때문에 연말까지 금리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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