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화 한 통에… ‘월드컵 퇴장’ 美 골잡이 16강 출전 허용

문재연 기자 외 1명

FIFA, 폴라린 발로건 16강전 출전 허용
32강전서 상대 선수 발목 밟아 ‘레드카드’
외신 “트럼프와 백악관, 친분 이용해 번복”
FIFA 회장, 트럼프에 ‘평화상’ 수여도

2018년 8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회동 중 선물 받은 레드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32강전 경기에서 퇴장당한 미국 축구 대표팀의 골잡이가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월드컵 본선 대회에서 ‘레드카드’에 따른 출전 정지가 유예된 건 64년 만에 처음이다. 징계 번복 과정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상대국 벨기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FIFA는 5일(현지시간) 미국 대표팀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AS모나코)에게 내려진 1경기 출전 정지 처분의 집행을 1년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FIFA 위원회에 징계 집행을 보류할 재량권을 부여한 징계규정 27조가 근거였다. 구체적인 유예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발로건은 이번 월드컵에서 3골을 기록한 미국의 핵심 공격수다. 그러나 1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32강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발목을 밟아 비디오 판독(VAR) 끝에 레드카드를 받았다. 레드카드에는 다음 경기 자동 출전 정지가 따르므로 발로건은 7일 시애틀에서 열리는 벨기에와의 16강전에 나설 수 없는 상태였다.

트럼프, FIFA 회장에 직접 전화

결정이 갑자기 번복된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32강전 직후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레드카드 재검토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앤드루 줄리아니 백악관 월드컵 태스크포스(TF) 총괄도 변호사들을 동원해 미국축구연맹의 이의 제기를 지원할 전략까지 짰다고 전했다.

단순한 ‘전화 한 통’이 아니었다. NYT에 따르면 미국축구연맹의 주요 기부자인 헤지펀드 매니저 스콧 굿윈은 32강전 주심 라파엘 클라우스가 브라질에서 레드카드 남발로 승부 조작 의혹에 연루됐다는 주장을 백악관 측에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이를 직접 언급했다.

FIFA의 징계 유예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월드컵 예선에서 상대 수비수를 팔꿈치로 가격해 받은 3경기 출전 정지 가운데 잔여 2경기의 집행이 유예된 바 있다. 그러나 예선이 아닌 본선 경기 레드카드가 출전 정지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1962년 칠레 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더구나 징계 규정 27조를 근거로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유예 처분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벨기에 분노, 축구계도 비판

벨기에 왕립 축구협회는 분노했다. 벨기에 축구협회는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2026 FIFA 월드컵 대회 규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참가국의 정당한 권리와 축구의 공정성 원칙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디 가르시아 벨기에 감독은 “FIFA 사무실에서는 7월 5일이 유럽의 만우절인 줄 몰랐다”고 비꼬았다.

축구계에서는 FIFA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선례가 남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르웨이의 스톨레 솔바켄 감독은 브라질전 승리 직후 기자들에게 “다음 레드카드는 어딘가의 어떤 위원회가 없애줄 것인가”라며 “월드컵에 상처를 줄 아주아주 나쁜 결정”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축구 평론가 존 워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발로건은 경기장 근처에도 가선 안 된다”며 FIFA의 결정을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인판티노 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판티노 회장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뒤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FIFA 윤리위원회에 제소를 당한 상태다. NYT는 인판티노 회장이 스스로를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라고 묘사하며 FIFA의 122년 역사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찬사와 선물을 아끼지 않아 왔다고 평가했다. FIFA는 이번 대회에서 이란 선수단을 멕시코에 머물게 하고 미국 체류 시간을 제한해 형평성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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