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파일’ 두고 백악관 상황실서 격돌… “트럼프는 분노했다”
손효숙 기자
NYT, 엡스타인 두고 백악관 내부 분열 보도
밴스 ‘전면 공개’ vs 와일스 ‘철통 방어’ 대립
트럼프, 파일 언급에 신경질…이름 거론 금기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민주당 의원들이 2월 공개한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유산 발췌 사진. 이 사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엡스타인(왼쪽 두 번째)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미 하원 감독위원회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핵심부에서 아동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기밀문서 처리를 두고 벌어진 ‘진흙탕 싸움’의 전말이 드러났다. 지난해 여름 백악관 상황실은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둘러싼 참모들 간의 대립으로 며칠간 마비 상태에 빠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백악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지난해 7월 17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엡스타인 파일 공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 비밀회의가 여러 차례 소집됐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JD 밴스 부통령,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데이비드 워링턴 백악관 법률고문, 토드 블랜치 법무부 부장관, 캐시 파텔 FBI 국장 등 참모진이 총출동했다.
회의의 핵심 쟁점은 파일 공개의 수위였다. 밴스 부통령은 “투명성만이 살길”이라며 파일의 전면 공개와 의회 차원의 후속 조사를 주장했다. 심지어 엡스타인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을 교도소에서 인터뷰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반면 와일스 비서실장을 비롯한 다른 참모진은 이러한 접근을 “음모론적 발상”이라 일축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와일스 실장은 밴스의 주장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방어적 태도를 고수했다. 회의장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백악관 상황실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민감한 의혹들까지 오가는 분열의 현장이었다”고 회상했다.

2019년 7월 제프리 벌맨 뉴욕남부지검장이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왼쪽 속 인물)을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기소한다며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있다. 뉴욕=UPI 연합뉴스
NYT에 따르면 이 같은 치열한 공방의 원인은 엡스타인 문제를 극도로 기피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파일이 자신의 이름과 얽혀 거론되는 것 자체에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 내부 인사는 “대통령 앞에서 엡스타인 파일을 언급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며 “누군가 이 문제를 꺼내기라도 하면 대통령은 즉각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내부 갈등은 참모들 간 의견 차이를 넘어 트럼프식 통치 스타일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NYT는 짚었다. 정책적인 판단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이미지 관리와 정치적 유불리가 우선시되는 백악관의 대응이 국가적 사안인 엡스타인 파일 처리를 수개월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의 강력한 압박과 공화당 내부의 반발 기류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말 엡스타인과 관련된 모든 기밀 기록, 문서, 통신 및 수사 자료의 공개를 명령한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에 서명하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서명 이후에도 공개된 문서 곳곳이 검게 지워져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 손효숙 기자sh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