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관 사칭 전화사기 갈수록 기승… 한인 123억 피해

▶ 북미 대상 ‘보이스피싱’ 캄보디아 조직 체포

▶ LA 한인 6만불 송금… 실제 직원 명의 도용도
▶ “기관 홈페이지 접속·송금 요청은 100% 사기”

한국 기관 사칭 전화사기 갈수록 기승… 한인 123억 피해

피해자가 검사를 사칭한 남성과 주고 받은 텍스트 메시지. [본인 제공]

“당신 명의로 한국 우리은행에 개설된 계좌가 돈세탁에 이용됐고, 인터폴과 FBI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사우스 패사디나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권자 한인 여성 이모씨는 지난 6월 서울중앙지검 김지웅 검사를 사칭한 남성의 전화를 받은 뒤 3주 동안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사기범들은 한국 정부의 보안 앱이라며 특정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유도하고 하루 수시간씩 통화하며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결국 “법원이 20만 달러의 보석금을 결정했다”며 상하이은행 홍콩 지점 계좌로 송금을 요구했고, 이씨는 6만 달러를 보냈다. 추가 송금을 요구받고서야 보이스피싱임을 깨달았지만 이미 거액의 피해를 입은 뒤였다.

이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손실은 물론 가족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고 지금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고 있다”며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경험을 공개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노린 한국 정부기관 사칭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면서 실제 피해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북미 한인들을 상대로 123억원(현 환율 기준 미화 약 864만 달러)을 가로챈 대규모 보이스피싱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충북경찰청은 6일(한국시간) 캄보디아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거주 한인들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인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범죄단체 가입)로 조직원 14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10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금융감독원과 검찰 등 한국 정부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마약 범죄와 돈세탁 사건에 연루됐다”고 속인 뒤 “불법 자금을 조사해야 한다”며 가상자산 송금을 요구하는 수법으로 미국과 캐나다 거주 한인 15명에게서 모두 123억원을 가로챘다.

사기범들은 “한국 법원이나 검찰에서 전달할 서류가 있다”, “범죄에 연루됐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며 접근한 뒤 검찰·경찰·금융감독원 등을 잇달아 사칭한다. 이후 가짜 정부기관 홈페이지 접속이나 시그널, 텔레그램 등 메신저 설치를 유도해 개인정보를 빼내거나 해외 계좌 송금을 요구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조직이 검거됐지만 미주 한인사회를 겨냥한 사기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 ‘스레드’에는 “LA 총영사관에서 한국 법원의 공문이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경험담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이용자는 “정모 실무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영사관에 공문이 와 있으니 방문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며 “검색해 보니 총영사관은 법원 공문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안내가 나와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본보 확인 결과 이 사례에서는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이름이 사기범들에게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직원 이름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으려 한 것이다.

LA 총영사관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권민 언론담당 영사는 “총영사관은 재외공관 사칭 보이스피싱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며 “실제 직원 이름까지 악용되는 사례가 확인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당국은 한국 정부기관과 재외공관이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요구하거나 송금을 지시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발신번호가 실제 정부기관이나 공관 번호와 같더라도 이를 믿어서는 안 되며, 전화를 받았을 경우에는 즉시 통화를 종료한 뒤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대표번호로 직접 연락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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