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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기념관 방문객 발길 이어져

사진)한국 명문고인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 90여명이 서재필 기념관을 찾아 서재필 박사의 일생과 독립운동의 업적 등을 직접 둘러 봤으며 한국 보훈처 박민식 장관도 기념관을 방문했다.

필라델피아 방문시 꼭 가봐야 할 곳 ‘명소’ 부각

서재필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들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동부지역을 찾는 한국의 명사나 학생들 뿐만 아니라 현지 주류사회 인사들과 대학생들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명실상부한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메모리얼 데이 주간에 김의환 주뉴욕총영사가 서재필 기념관을 찾았다.

이에 앞서 한국 명문고인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 90명명이 서재필 기념관을 찾아 서재필 박사의 일생과 독립운동의 업적 등을 직접 둘러 봤으며 한국 보훈처 박민식 장관도 기념관을 방문했다.

서재필 기념관 방문객은 비단 한인들에 그치지 않는다. 현지 주류사회 인사들과 학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사우스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와이드너 대학의 미국사 수강생들이 단체로 기념관을 찾았다. 로어 귀니드 타운십에 있는 귀니드 머시 대학 교수들은 교내 아시아계 미국 학생들을 대동하고 기념관을 방문했다.

서재필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자 이에 대한 당국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달 초 기념관이 소재한 델라웨어 카운티 의 모니카 테일러 시의회 의장과 행정 공무원들이 기념관을 찾아 서재필 박사의 일생과 미국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서재필 기념관을 찾은 델라웨어 카운티 정부 관계자들.

서재필 기념관이 서재필 박사가 미국에서 전개했던 독립운동의 정신과 한국문화를 미국에 알리는 역할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에도 한 페이지가 기록되어 가고 있다는 평가다.

최정수 서재필기념재단 회장은 “ 우리 젊은 세대 뿐만 아니라 미 주류사회가 서재필 기념관을 방문해 우리의 역사를 배움으로써 서로 잘 이해하고 상호 교류,협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념관은 서재필박사 1951년 타계할 때까지 25년간 살았고 이후 차녀 뮤리엘 여사가 1984년까지 머물렀던 유서깊은 곳이다. 펜실베이니아 역사유적지로도 지정돼 있다.

전시관에는 독립신문, 독립청원서, 친우회, 구미위원부 발행 각종 문서들과 유품 등이 비치돼 있다. 

미국 독립기념관에서 가져온 1919년 제1차 한인회의 이후 회의에 참가한 한인과 필라델피아시에서 지원해 준 시음악대가 필라델피아 시가를 행진하는 영상도 전시되어 있다.

서재필 박사는 구한말 개화사상을 편 민족의 선구자로 미국의 첫 한인 의사이자 제1호 한인 시민권자이다. 미국에서의 3.1운동이라 불리는 ‘제1차 한인회의’를 이끈 독립운동 지도자였으며 미국내 한인사회의 아버지로 불린다.

서재필 기념관 주소는 100 East Lincoln Street Media, PA

문의는 267-703-9518(서경희)

서재필 박사

서재필 박사는 19세기말 이래 폐쇄된 조선왕조와 국민에게 새로운 사상을 심어주고 개혁을 부르짖으며 민중운동을 일으켰다.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며 미국에 온뒤 독립운동을 리드했다. 독립을 위해 최고의 민간외교관이 되었다. 미국 정부와 주요 인사에게 서한을 통해서 조선의 독립을 호소했다. 

고국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미국에 전해졌다. 그리고 상해에는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서재필은 1919년 4월14일 필라델피아에서 각지의 한인 지도자들을 모았다. 미국내에서 3.1운동을 벌인 것이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150여명이 참가한 한인대회(The First Korean Congress) 의장으로 미국 정부와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고, 조선 독립을 호소했다. 이승만, 정한경, 민찬호 등은 독립을 외치며 필리델피아 시내를 행진했다.

1945년 8월15일 대한독립이 찾아왔다. 서재필은 1947년 7월 미군정청 최고고문으로 다시 고국땅을 밟았다. 

서재필은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 너무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다. 어려서 고국에서 20년, 두번 귀국하여 4년, 미국에서 63년(필라델피아 55년, 워싱턴DC 8년)의 세월을 보냈다. 서재필 박사는 1951년 1월5일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해는 1994년 4월8일 서울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부인 뮤리엘 암스트롱과의 사이에 스테파니와 뮤리엘 두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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