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은 딸 위해 ‘미토콘드리아 이식’…억만장자가 바꾼 의학 연구 흐름

신혜정 기자

트럼프 정부 공공연구비 삭감 속
억만장자의 의학 연구 영향력 커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 마운트시나이 병원에서 딸 루시와 함께 퇴원하며 직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X 캡처

미국 억만장자의 딸의 시력을 되찾아주기 위해 다리에서 세포를 채취해 눈에 이식하는 ‘미토콘드리아 이식’ 치료를 미 식품의약국(FDA)이 긴급 승인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공공 과학의 연구비를 축소하는 상황에서, 억만장자들이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료기술의 연구와 적용을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영원한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장수 연구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WP에 따르면, 미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FDA가 5월 딸 루시(26)의 치료를 위한 미토콘드리아 이식 치료 긴급사용을 승인한 덕분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루시는 올해 2월 뉴욕 브루클린의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말을 할 수도, 볼 수도 없게 됐다. 하지만 FDA의 승인 이후 루시가 입원한 미국 뉴욕 마운트시나이병원 의료진은 그의 다리 근육에서 미토콘드리아를 떼어내 양쪽 눈에 주입했다. 루시는 치료 뒤 한동안 빛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하지만 약 한 달 후 효과가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토콘드리아 이식은 우리 몸의 ‘에너지공장’으로 불리는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이용해 손상된 세포의 회복을 돕는 치료다. 건강한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채취해 손상된 조직에 넣으면 세포의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원리다. 특히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저하가 노화와 각종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쌓이면서, 항노화·수명 연장 분야에서도 이 치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다만 FDA의 이번 승인은 긴급 절차로, 이 치료법 자체가 아직 상용화된 건 아니다. 2017년 처음 복부 근육의 미토콘드리아를 심장으로 이식하는 치료가 시행됐고, 2024년에 뇌 등 다른 분야로 이식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눈에 적용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애크먼은 딸의 병을 완치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치료를 계기로 뇌 건강 및 장수 연구에 4억 달러(약 5,3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부인 네리 옥스먼과 함께 비영리기관 ‘애크먼 옥스먼 연구소(AOI)’를 설립하고, 연구 성과를 기업으로 연결하는 벤처투자 조직도 운영할 계획이다. 애크먼은 엑스에 “딸이 받은 치료를 다른 사람들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딸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도 물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시의 치료를 담당한 뉴욕 마운트시나이병원의 신경과학자 다비드 푸트리노 교수는 WP에 “유망한 새 치료법을 사람을 대상으로 적용해볼 필요성이 있었는데 마침 안전성을 검증할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고 밝혔다.

WP는 이번 사례가 의학 연구에 대한 초부유층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 연구비 축소와 맞물려 더욱 부각되고 있다. WP에 따르면 지난해 미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한 경쟁 연구 과제는 전년보다 최소 2,700개(약 15%) 감소했다.

반면 억만장자들의 의학 투자는 늘어나며 공공 연구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특히 이들의 관심사인 수명연장이나 뇌 과학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을 10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에 약 1억8,000만 달러(약 2,394억 원)를 투자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역시 세포의 재생과 회복력을 연구하는 알토스랩에 30억 달러(3조9,900억 원)의 거금을 투자했다.

WP는 “애크먼을 비롯한 미국 억만장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위해 로버트 F.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 등 장수 연구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는 인사들을 임명해왔다”며 “이들은 FDA에 아예 노화 자체를 질병으로 분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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