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변하려면… ‘제2의 손흥민·이강인, 시작은 집’ 깨달아야”
<‘日 유소년 축구 대부’ 톰 바이어 인터뷰>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서 코치로 활동
“일본 선수들 테크닉, 전 세계 최고 수준”
“비범한 선수는 훈련장보다 가정서 탄생”
“2~5세 때 기술 가르쳐야 ‘딥 러닝’ 가능”
“감독 교체 능사 아냐… 장기 목표 세우길”

‘일본 유소년 축구의 대부’로 불리는 톰 바이어(맨 앞)가 2008년 6월 일본 유소년 축구 대회 결승전이 열린 일본 요코하마시의 한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다. 톰 바이어 제공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해법이 쉬이 보이지 않는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32강 문턱도 밟지 못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얘기다. ‘황금 세대’로 불리는 역대급 선수진을 이끌고도 졸전을 거듭하다 결국 초라한 성적표(조별리그 1승 2패)를 남긴 홍명보 전 감독은 결국 지휘봉을 내려놨다. 단지 ’32강 진출 실패’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기대 수준을 한참 밑도는 경기력을 보인 탓에 2년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불공정성 논란도 재차 불거졌다. ‘곪을 대로 곪은 문제가 터졌다’는 진단이 내려졌고, 여진(餘震)은 이어지고 있다. 축구계뿐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가세해 “한국 축구를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양상이다.
하지만 당장 두 달 뒤, 한국 축구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른다. 올해 9월 일본에서 열리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무대다. 문제는 대회에 참가하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의 최근 성적이 신통치 않다는 점이다. 한국 U-23 대표팀은 직전 대회인 올해 1월 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에서 연장전 끝에 베트남에 무릎을 꿇으며 4위에 그쳤다. 심지어 지난달 친선전에서는 키르기스스탄에 0-1로 패배했다.
‘한국의 숙적’ 일본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튀니지를 4-0으로 격파했고,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와 2-2 무승부를 거뒀다. 경기력에 대한 호평 속에 ‘1승 2무’ 성적으로 일찌감치 32강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했다. 비록 32강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만나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점수 차는 1점(1-2 패)에 불과했다. U-23 대표팀의 성과는 더욱 눈부시다. 아시안컵 결승에서 중국을 4-0으로 격파해 대회 사상 첫 2연패를 이뤄냈고, 최다 우승국(2016년·2024년·2026년)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디서부터 이런 격차가 생긴 걸까. 막연한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한국일보는 지난 6일 ‘일본 유소년 축구의 대부’ 톰 바이어(65)와 화상 인터뷰를 실시했다. 미국 뉴욕 출신인 바이어는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일본 전역에서 150개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이 ‘현대 축구의 설계자(Football Architects)’ 6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해 인터뷰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시종일관 “축구의 기술력은 2~5세 때의 경험이 좌우한다”며 한국 축구가 장기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는 일문일답.

일본 도쿄에서 유소년 축구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톰 바이어가 6일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 중 발언하고 있다. 줌 영상 캡쳐
-한국 독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해 달라.
“미국에서 대학 축구선수로 활동하다가 구단을 찾아 1986년 일본으로 건너왔다. 3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은 뒤 코치 일을 시작해 유소년 선수(6~12세)들을 주로 가르쳤다. 일본 방송국과 연이 닿아 캐스팅된 1998년부터 ‘톰 상(선생님을 뜻하는 일본어)의 축구 테크닉’이라는 이름의 TV 프로그램에 10여 년간 출연했다. 그때 이후로 축구 관련 잡지 기고와 DVD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의 축구 철학을 전파해 왔다.”
-일본 선수들을 가르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강조하나.
“기술력이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코치인 빌 코에르버(1924~2011)의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다. 볼 컨트롤, 1 대 1 돌파, 퍼스트 터치 같은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런 훈련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전파하는 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세운 축구 아카데미에서는 오로지 기술 위주의 훈련만 진행한다. 미나미노 다쿠미(31·AS모나코)와 엔도 와타루(33·리버풀), 도안 리츠(28·프랑크푸르트) 등이 우리 아카데미 출신이다.”
-그런 방식이 일본 축구의 발전에 유효했다고 보나.
“일본은 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일본 선수들의 훈련 세션을 보면 그런 점을 많이 강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 32강에서 브라질에 아쉽게 지긴 했지만, 나름 저력을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많은 나라에서 일본 축구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발전했는지 궁금해하고 있지 않나. 물론 일본 축구 역시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 그러나 최소한 기술력만큼은 이제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1일 서울 종로구의 축구회관 빌딩에 대한축구협회 로고가 걸려 있다. 뉴스1
-‘축구는 집에서 시작된다(Football Starts at Home)’는 이름의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내 커리어 전반에 걸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 콘셉트다.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국은 211개나 된다. 그런데 그중 아주 소수, 오직 8개 국가만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왜 그런지 의문이 들었다. 이 나라들의 코치들이 특히 뛰어난가? 인프라가 압도적으로 잘 마련돼 있는 건가? 아니었다. 연구해 보니 정답은 ‘축구 문화’에 있었다. 해당 국가들의 선수들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축구를 ‘문화’로서 자연스럽게 접한다. 축구를 입문하기에 가장 적합한 ‘골든 에이지(Golden Age)’, 즉 2~5세 때부터 공과 친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전에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손흥민(34·LAFC)을 대표적 예시로 꼽았다.
“‘축구는 집에서 시작된다’는 콘셉트의 1호 선수라고 보면 된다. 나의 강연용 파워포인트(PPT) 프레젠테이션은 늘 손흥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축구선수 출신인 아버지(손웅정씨) 밑에서 자란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축구를 했다. 이강인(25·파리생제르맹)도 마찬가지로 유년기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지금 한국에는 ‘좋은 선수(Good Player)’가 많긴 하지만, 손흥민과 이강인 같은 ‘비범한 선수(Extraordinary Player)’는 구단 훈련장이 아니라 가정에서, 집 앞마당에서, 동네 골목에서 탄생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어릴 때 훈련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시기다. 2~5세 아이들에게 공을 주면 대부분 본능적으로 공을 뻥 찬다. 나는 아이가 공을 차는 것 대신 발바닥으로 굴려 가며 다뤄보게끔 훈련시키라고 조언한다. 이때 부모가 계속 옆에 있어 주는 게 중요하다. 부모와 함께한 공놀이에서 긍정적 감정을 느끼면, 그때의 경험과 감각은 아이의 뇌에 깊게 각인된다. 이런 ‘심층 학습(Deep Learning·딥 러닝)’을 통해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

‘일본 유소년 축구의 대부’ 톰 바이어가 2024년 9월 필리핀 남아구산주에서 필리핀축구협회 관계자들을 상대로 강연하고 있다. 유튜브 ‘Football Starts at Home’ 영상 캡쳐
-현실적 한계도 있지 않을까.
“아시아 부모들은 스포츠를 ‘공부에 방해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실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다. 과학적으로 볼 컨트롤 훈련은 아이의 학습 능력에도 도움이 된다. 신경심리학자 존 J. 레이티 박사에 따르면, 공을 다룰 때 쓰이는 뇌 부위가 기억력, 집중력, 간단한 계산 능력 같은 인지·사고 기능도 담당한다. 어릴 적 시작한 축구가 향후 학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존 J. 레이티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바이어의 저서인 ‘축구는 집에서 시작된다'(2016) 추천사에서 “수학을 위한 뇌와 축구 기술을 위한 뇌는 따로 있지 않다. 그 두 행위는 같은 뇌 부위에서 이뤄지며, 서로를 돕는 형제자매처럼 하나가 다른 하나를 돕는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부진에 따른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팀 감독을 바꿔 당장 다음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야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차세대 선수 육성’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긴 어렵다. 대한축구협회(KFA)나 K리그 구단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엔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다. ‘골든 에이지'(2~5세)의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국 축구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할 수도 있다. 축구 강국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한국 축구계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KFA나 K리그,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꼭 읽어 봤으면 하는 백서가 있다. 지난해 10월 스코틀랜드축구협회가 발간한 ‘남자축구 유소년 육성 체계 분석'(Review of Youth Development in Men’s Football)’이다. 리오넬 메시(39·인터 마이애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알 나스르) 등 전설적인 축구선수 22명을 조사한 결과, 모두 내가 강조한 ‘골든 에이지’ 시절에 축구를 접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백서를 읽고 나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체계를 갖춰 어린 선수들을 잘 키워 낸다면 언젠가 한국이 다시 아시아 축구를 제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최현빈 기자gonnalight@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