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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괴담과 광우병의 추억

2008년 6월 서울 광화문 일대는 몰려나온 시민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정 주부부터 울부짖는 여중생까지 “명박아, 미친 소고기 너나 먹어라”를 외치며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해 4월부터 8월까지 장장 4개월 동안 연인원 수백만명이 동원된 데모로 수도 한복판은 사실상 마비됐다.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일환으로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기로 했고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가 협상을 타결했는데 미국산 소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괴담이 퍼지면서 전국적인 수입 반대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결정적 계기는 그 해 4월 보도된 MBC의 PD 수첩이었다. MBC는 이 프로에서 다우너 소(일명 앉은뱅이 소)를 광우병 소로 둔갑시키고,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이 불명확한데도 이를 광우병 사망으로 단정하고,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큰 유전자를 가졌다는 등 허위 보도를 내보냈다. 이는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가 허위 확인 판결이 내려졌으며 MBC는 정정 보도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보도 후 3년이 지난 뒤 이야기고 당시 보도는 광우병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민심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소고기는 수입되기 시작했고 그 후 수천만명의 한국인이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었다. 그 동안 이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나 사망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그렇다. ‘세계 동물 보건 기구’(WOAH)는 최근 세계 광우병 발생 사례가 0에 근접했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면 15년 전 미국산 소고기가 들어오면 한국인은 멸종한다고 아우성 치던 사람들은 최소한 사과 한 마디 정도는 할 법 한데도 어느 단체 누구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이가 없다. 일부에서는 시위를 했기 때문에 깨끗한 소고기가 들어와 안전하게 됐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위를 안 한 나라에서도 광우병이 사라진 것은 어떻게 설명이 되나.

이들도 자신이 잘못된 주장을 했다는 것을 속으로는 알고 있다. 광우병 파동 15 주년을 맞아 단 한 곳도 반대 시위를 기념하고 자랑하는 행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상 최대 표차로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힘을 빼는 것이 목적이었고 광우병 시위는 그 수단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15년이 지난 지금 서울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이번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광우병의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냉각수를 조만간 태평양으로 흘려 보낼 방침인데 한국의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것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태세다.

향후 30년간 배출할 오염수의 양은 130만 톤으로 이중 대부분 오염 물질은 정화 장치를 통해 안전 수준 이하로 걸러지나 삼중 수소는 기준치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 단체 등은 삼중 수소의 반감기가 13년이라면서 이를 더 보관했다 배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탱크 과포화 상태로 그럴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후쿠시마에서 태평양으로 오염수를 방출하면 그것은 구로시오 해류를 따라 알래스카를 거쳐 미 서해안에 먼저 이른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원자력 안전도를 책임지는 ‘국제 원자력 기구’(IAEA)도 같은 생각이다. 한국의 야당과 일부 시민 단체만 일본 어민보다 더 극렬한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배출되는 130만 톤은 태평양이 담고 있는 물 전체의 1천억 분의 1도 안 되는 양이다. 물론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바다를 떠돌고 이것이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한 가벼이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외부 기관이 안전하다는데도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이를 부인하고 위험성을 부추기며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광우병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 야당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돈봉투 리스크, 김남국 코인 리스크, 조국 정치 재개 리스크 등 악재가 첩첩이 쌓인 상태다. 광우병으로 본 재미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유혹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판은 지난 십수년간 광우병 괴담을 비롯, 천안함 괴담과 사드 괴담 등 정책과 철학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 없는 소문과 선전 선동이 판을 치는 개판이 돼 버렸다. 한국 국민과 정치인들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광우병 재판으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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